국가 장기 전력수급계획에 4차 산업혁명이 빠졌다

IoT, AI, 빅데이터 등 소비량 냉철한 분석없이 보수적 접근...7차보다 원전10기 줄어

문재인 정부의 탈(脫) 원전·석탄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국가 장기 전력 수급 계획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발생할 전력 수요가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사물인터넷(IoT)은 물론 앞으로 급증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센터 운용, 전기자동차 충전 등에 필요한 전력 소비량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 현재 수립 과정에 있는 8차 전력 수급 기본계획은 2030년을 기준으로 7차보다 원전 10기 분량이 줄어든 전력 수요를 예측했다. 최종 결론을 내기까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늘어날 전력 수요에 대해 냉철한 분석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왼쪽부터 양준모 연세대 교수, 서병선 고려대 교수, 홍종호 서울대 교수, 조흥종 단국대 교수, 김창식 성균관대 교수, 신병윤 고려대 박사, 김상훈 산업연구원 박사, 윤태연 선문대 교수가 8차 전력수급계획 수요전망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양준모 연세대 교수, 서병선 고려대 교수, 홍종호 서울대 교수, 조흥종 단국대 교수, 김창식 성균관대 교수, 신병윤 고려대 박사, 김상훈 산업연구원 박사, 윤태연 선문대 교수가 8차 전력수급계획 수요전망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8차 전력 수급 기본계획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증할 전력 수요 분석과 전망을 반영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AI, 딥러닝 기술이 확대되면 데이터센터당 최소 1개 화력발전소 규모의 전력 생산이 필요하다. 이세돌과 바둑 대전을 펼친 AI 알파고의 경우 12GW의 전력을 사용했다. 얼마전 가동을 멈춘 고리 1호기 발전용량은 587MW에 불과했다.

이날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와 한국자원경제학회가 주최한 '친환경 전력공급체계 구현을 위한 세미나'에서도 4차 산업혁명과 그에 따르는 전력 수요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전기차, 자율주행자동차, 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늘어나는 데이터 양 처리에 필요한 전력 수요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전기 다소비 분야의 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전력 수요 전망이 지나치게 보수 형태를 띤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흥종 단국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산업으로 언급되는 분야에서 전기가 얼마나 사용되고 이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관한 수요 예측이 없다”면서 “AI와 자율주행차 등 최근 언급되고 있는 산업 대부분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이들의 전기 소비에 대한 과학 및 논리의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미나에서는 7차 전력 수급 계획 대비 11.3기가와트(GW)가 줄어든 수요 전망에 전기차 보급과 4차 산업혁명, 누진제 등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소개됐다.

전기차는 2030년 100만대 보급을 기준으로 약 50만㎾ 수준의 충전 부하 증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석탄화력발전소 1기 수준의 용량이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는 제조업 혁신과 신재생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융합 등에 따른 에너지 전환·효율성 증대 효과가 언급됐다. 누진제 개편에 따른 전기 소비 증가는 겨울철 40~50만㎾, 여름철 80만㎾ 수준으로 각각 예상됐다. 당초 수요 전망에서 11.3GW가 줄어들다 보니 미래 산업의 전기 수요 전망도 보수 형태로 제시됐다는 분석이다. 전기차는 현재 완속 충전시 7.7㎾ 전기를 소비하지만 전체로는 기술 발전을 통해 에너지 소비는 줄고 효율을 증가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했다.

참석자들은 8차 수요 전망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전력 수요가 사실상 반영이 안됐다고 지적했다.

한 참석자는 “현재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에너지 소비 형태가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이미 많은 산업에서 이와 관련된 전기 소비가 반영되고 있다”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산업이 에너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분명히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장기 전력수급계획에 4차 산업혁명이 빠졌다

세미나 발제자도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했다. 미래 산업의 전기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해서 반영하는 것이 현실에서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상훈 산업연구원 박사는 “4차 산업혁명은 현상이라기보다 한 기업의 전략으로 이를 시도하는가 여부에 따라 실제 전기 소비와 수준이 나온다”면서 “AI와 빅데이터 시대 전기 수요를 예측하기 위해선 실제 해당 사례 소비량 추이가 어느 정도 나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AI와 같은 4차 산업혁명은 사람이 머리로 하던 것을 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라면서 “최근 조선업 침체와 새로운 산업 등장처럼 국가 산업 구조 변화 부문도 수요 전망에 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주도 실적 기반 전기차 충전에 따른 부하 증가량, 단위: 만㎾, 자료: 친환경 전력공급체계 세미나 자료 >



제주도 실적 기반 전기차 충전에 따른 부하 증가량, 단위: 만㎾, 자료: 친환경 전력공급체계 세미나 자료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