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R&D, 안전·해체로 선회…체력 약화 우려

정부가 원자력 연구개발(R&D) 방향을 해체·안전 기술 확보, 융합 기술 개발로 선회한다. 고속소듐냉각로(SFR), 수출용 모듈 원자로 같은 차세대 발전 기술 개발은 지양한다. 정부는 기존 원자력 R&D가 지나치게 원전 중심이었다고 평가했다. 정책 급선회로 원자력 기초 연구 역량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조무제)은 8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림원탁토론회에 '미래원자력 연구개발 추진계획안'을 발표했다. 추진안은 '경제 성장 지원 중심 기술 개발'에서 '국민 생명 안전 중심 미래지향적 기술 개발'로 원자력 R&D 정책을 바꾸는 게 골자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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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원자로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면 이제는 원전의 안전 관리, 해체 기술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원전에 비해 덜 다뤄진 방사선 기술 이용, 타 분야 기술과의 융합 연구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기존의 R&D가 원전 확대, 성능 향상에 치우쳐 다른 현안 해결에 미지근했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내년 138억원 예산을 투입해 원전 해체 기술 확보, 장비 개발, 인력 양성을 지원한다. 영구 정지시킨 고리1호의 해체가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2019년까지 원전 해체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한다. 외부 기술 용역을 실시, 내년 1월까지 국내 해체 기술 확보 현황과 기술 수준을 진단한다. 가동 중인 원전의 사고 예측, 예방, 대응 기술 개발에도 내년에 400억원을 투입한다.

사용후핵연료 처분도 중요 과제로 봤다. 2021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시편, 절편, 연료봉, 집합체 운송을 위한 밀봉 특수 용기를 개발한다. 중간저장시설 안전성도 확보한다. 핵연료 처분 부지 발굴을 위한 지질 특성 평가를 실시한다.

원자력·방사선 용도를 전력 생산에 한정하지 않는다. 우주 공간에서 발생하는 고방사선 환경을 지상에서 모의 시험하고, 우주기술과 융합 연구한다. 원자력 추진 우주선, 우주기지용 소형 원자로, 우주방사선 차폐 기술 개발을 모색한다. 원자력을 이용한 미세먼지 저감, 수질 오염 저감 등 새로운 연구 주제를 발굴한다.

정부는 전문가 토론회, 권역별 설명회 등에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9월 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을 추진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원자력 R&D는 지난 20여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추진됐으나 이제는 국민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인 미래 지향형 R&D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면서 “새롭게 추진할 R&D로 신산업 생태계가 조성되고, 우수 연구 인력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발전 분야 R&D를 사실상 배척하면서 균형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이미 SFR, 수출용 모듈 원자로 같은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을 보류한 상태다. 신규 원전 건설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기초 연구마저 외면한다는 지적이다.

원자력계 관계자는 “국가 R&D 역할은 원전 개선이든 해체든 기초 기술을 확보하는 것인데 당장의 해체 기술을 강조하다 보면 이 역할이 흔들릴 수 있다”면서 “인재 이탈, 기초 연구 약화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