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2>'남자마음설명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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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대학 동기 중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신문 하단에 난 '신입사원 모집' 광고를 샅샅이 뒤져도 대졸 여사원을 남자와 동등하게 뽑는 기업은 없었다. '신입사원 남자 00명 모집/군필자/ROTC 우대. 여자 비서직 0명'. 비서직 0명도 대부분은 내정자가 있었다. 여자 공채는 요식행위였다. 컴퓨터, 타자, 영어회화 등 기본 스펙으로는 취업이 요원했다.

경기도 S시에 있는 한 정책연구소 비서실에 취업 기회가 생겼다. 한 명 뽑는데 수십 명이 지원했다. 취업이 된다 해도 교통편이 없었다. 동네 마을버스가 있지만 내려서 걷는 시간이 많았다. 서울에서 그곳까지 출근하려면 2시간을 각오해야 했다. 그래도 취업하고 싶었다. 연구소 근무환경은 최고였다. 연봉이 일반 기업 두 배가 넘었다. 상여금도 600%였다. 교통비가 따로 지급된다고 하니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연구소장 비서를 뽑는데 2차 면접까지 '실장'이 관여했다. 최종면접에 두 명이 올랐고 결국 합격했다. 아버지는 매일 자동차로 출근을 돕겠다는 약속을 했다. 출근 전날 실장은 비서가 해야 할 일을 미리 알려준다며 호출했다.

“미스 박, 소장님이 싫어하는 여자가 있는데 박씨 성을 가진 여자, 혈액형이 A인 여자 그리고 피부색이 까만 여자야. 세 가지를 모두 가진 미스 박을 왜 뽑았는지 알아? 자네가 예뻐서 뽑았어. 영어도 좀 하잖아. 우리 연구소엔 외국 손님도 자주 방문하기에 섹시하게 생긴 자네가 도움이 될 것 같더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열심히 하면 월급 말고도 생길 게 많을 거야.”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성희롱이었다. 수치심과 모멸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자격 없는 여자를 써먹을 데가 있어 채용한 것처럼 말했다. 비서 업무 외에 다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새내기 사회초년생도 알아들었다.

아버지께 그대로 전했다. 성미가 불같은 아버지는 어떤 놈이냐며 분개했다. 어머니가 겨우 말려 진정한 후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회사 절대 나갈 생각 하지도 말라”고.

나는 실장이 했던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으므로 정식 출근 하루를 앞두고 입사를 포기했다. 예쁘고 섹시한 비서의 도움을 이야기하는 그 눈빛은 추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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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출범한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맡은 T 교수가 쓴 책 '남자마음설명서'는 민망하고 불쾌하다. 그의 여성관은 음흉하다. 그의 성적 판타지는 상상 속에 머물러야만 했다. 여성에 대한 은밀한 상상은 그의 머릿속에서 자유로웠어야 했다. 머릿속 유희까지 탓할 수 없기에.

'솔직함'으로 포장되어 책으로 묶인 순간, 교수라는 이름으로 덧칠이 되는 순간, 그의 이야기에 회자되는 여성들은 성추행 대상이 된다. 대다수 '남자 마음'은 그이처럼 그렇게 드러내놓고 농락하지 않는다. 그것을 '남자 마음을 설명했다'고 포장하지 않는다. '남자 마음' 대상이 선생님이고 미성년자라면 더욱 그렇다. T씨의 책은 '내가 짐승이다'고 커밍아웃한 '철없는 남성'의 자기 고백서 수준에 불과하다.

자신의 변태적 생각을 '남자 마음'이라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솔직한 여성관이라고, 많은 남성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라고 변명하지 마라. 그 이야기 속에 언급됐을 여성에게는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람 중심'의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서 '세상의 절반'을 소외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라. 여자를 보는 그의 시선에 그를 보는 여자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