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 차단앱 비웃는 편법 지능망 서비스...'온나라 서비스'를 아십니까?

부산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다. '051'로 시작, 거래처 전화로 생각했다. 전화번호 차단 애플리케이션(앱)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번호로 표시됐다. 그러나 전화가 연결되자 서울 소재 B보험사로부터 온 암보험 텔레마케팅 전화였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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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 차단 앱이 활성화되자 대형 보험사들이 지역 번호를 조작, 텔레마케팅 하는 지능망 서비스를 편법 도입해 논란이다.

금융업계 콜센터 은어로는 '온나라 서비스'로 불린다. 최근 이 서비스를 연결시켜 주는 브로커까지 등장, 발신자 번호표시제도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반이 약한 일부 지방 보험사 콜센터가 지역번호를 조작해서 수신 응답률을 높이는 '온나라 서비스'를 대거 도입, 고객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실제 서울에서 전화를 걸어도 해당 고객 스마트폰 화면에는 고객이 주거하는 지역번호가 뜨는 지능망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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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등 전화번호 차단 앱 이용자가 늘면서 상품 권유 등 텔레마케팅 전화 수신 응답률이 떨어지자 보험사들이 통신서비스사업자나 중간 브로커와 계약을 맺고 하는 서비스다. 최근 도입됐다.

연계가 없는 지역 번호가 화면에 뜨면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전화 수신율을 높이기 위해 거래처나 일반 전화처럼 속이는 것이다. 통신사업자도 비싼 회선당 수수료를 받을 수 있어 이를 묵인하고 있다. 보험사 콜센터는 대부분 회선을 수백건 받아 이용하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괜찮은 신규 수익원이다.

보험사·카드사와 통신사 간 일종의 묵인된 담합이 형성된 것이다.

카드사는 자사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고객 정보를 건당 수수료를 받고 보험사에 판매한다. 대다수 카드사가 보험 판매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어 방카슈랑스 영업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보험사에 팔아 이윤을 남길 수 있다.

해당 보험사는 카드사로부터 건네받은 고객 정보를 통해 주거지 등을 파악한다. 그럼 통신사업자의 지능망 서비스를 이용해 지역번호를 변조, 텔레마케팅을 한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온나라 서비스를 이용하면 일반 텔레마케팅 수신율 대비 약 18% 이상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 콜센터 총괄 임원은 “전화번호 차단 앱에 대응하고, 전화 거는 주체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려는 편법”이라면서 “실제 통화 연결 비율이 서비스 도입 이후 20% 이상 높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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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지능망 서비스를 도입한 곳은 에이스손해보험, 라이나생명, AIA생명 등이다. 다른 보험사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보험사에 고객 DB를 제공한 카드사는 신한, 삼성, 비씨카드 등이다.

최근 이 서비스를 도입하려다 백지화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불법 소지가 다분해서 도입을 검토하다 백지화했다”면서 “고객 정보를 편법으로 활용하는 사례로 볼 수 있어 향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통신사업자는 온나라 서비스에 더해 주 단위로 전화번호를 일괄 변경해 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고객이 차단 앱을 이용하기 때문에 온나라 서비스를 통해 지역번호를 조작해도 해당 번호를 스팸으로 간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단위로 다른 번호를 부여하면 이를 피할 수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지능망 서비스는)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없고, 문제가 되는 온나라서비스는 중간에서 회선 유통을 하는 일부 하위 사업자들이 편법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알고 있다”며 “지역번호 변경 등을 통신사가 직접 제공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 인터넷상에서 통신사 로고를 단 브로커들이 편법으로 이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례가 많아 통신사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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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비스를 도입한 보험사도 법률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비스를 도입한 보험사 관계자는 “지역번호를 바꾼 것만으로 이를 번호 조작이나 도용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사례도 아니고, 좀 더 효과 높은 텔레마케팅을 위한 것뿐”이라고 반응했다.

금융 당국도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당국 관계자는 “통신 관련 서비스로 금융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