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미ㆍ중 격돌'과 한국 생존의 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중국의 미국 지적재산권 침해 조사를 개시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적재산권의 침해는 연간 수백만명의 고용 상실과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지적재산권 침해 조사를 지시했다. 최첨단 정보기술(IT)산업을 갖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특허기술과 저작권 보호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그런 만큼 이번 조사는 기술이전 요구라는 중국의 상관습을 겨냥한 고강도의 실력행사로 분석된다.

중국은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2025년까지 '제조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이번 조사로 '제조강국'을 실현하기 위한 중국의 첨단기술 확보 노력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조사는 트럼프 정권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영향력을 가진 중국에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유력하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조치는 표면에 드러난 현상에 불과하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관계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계 재미 정치평론가 첸 보콩(陳破空)은 신간 '미국과 중국의 격돌'에서 “미·중 관계는 러시아를 포함한 미·러·중의 3국 관계 속에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현대판 삼국지'라는 시각에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을 다룰 때는 정교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2개의 강력한 카드를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 카드와 대만 카드다.

지난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전격적인 중국방문 이래 미국은 '미·중 대(對) 러시아'라는 전략을 취해왔다.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이 탄생하면서 45년 동안 지속된 미국의 전략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장시간 회담하면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는 냉담했다. 트럼프 정권 발족이후 미·러 접근을 경계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은 미국에 한층 바짝 다가섰다. 북한 문제를 미·중 접근에 이용한 것이다.

이런 전략이 먹혀들어 한때 미·중 우호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문제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그 후 러시아는 독자적으로 북한을 지원했다. 중국도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남중국해 군함 파견과 대만 무기 공여 등을 통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올 가을에 공산당 대회를 앞둔 시진핑 주석은 국내의 대항세력에 대미 외교의 실패라는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그는 미·러 간에는 없는 밀접한 미·중 경제관계를 활용해 전반적인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산 쌀의 수입금지 해제에 합의한 것도 그 일환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러 접근 전략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 의혹'의 행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대(對) 중국'이라는 트럼프의 기본전략이 변하지 않는 이상 '현대판 삼국지'에서 중국의 초조감은 더 깊어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최근 버지니아주에서의 백인우월주의 옹호파와 인종차별 반대파의 충돌로 트럼프 정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또한 중국에는 악재다. 트럼프 정권에 조언해 주던 재계단체와 주요 인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떠나고 있어 미·중 경제 대화창구가 부실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판 삼국지'의 영향권 내에 있는 한국도 이러한 새로운 파워게임과 판도변화를 잘 읽어야 한다. 그 시금석이 9월 6~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3차 동방경제포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100여명의 기업인들과 러시아 측과의 비즈니스포럼이 개최된다. 이에 앞서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도 활약하고 있다.

국가 지도자들이 북위 37도(서울)에서 북위 43도(블라디보스토크)로 대거 이동한다. 더 넓고 높은 시각으로 지도를 보면서 비즈니스를 넘어 국가의 생존과 번영의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