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원뿔과 반도체

[데스크라인]원뿔과 반도체

사람 인식과 의식은 불완전하다. 일부 사실만을 놓고 진실이라고 믿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요즘 가짜 뉴스가 진실처럼 급속히 퍼지는 것도 이런 허점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원뿔을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한 쪽만 보여 주고 어떤 모양인지 물으면 어떤 답이 나올까. 정면에서 바라본 사람은 삼각형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래에서 본 사람은 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저마다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그만 사물 하나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운데 복잡하게 얽힌 사회 문제를 손쉽게 결론 낼 수 있을까.

최근 반도체 업계에선 모 매체에서 다룬 기사 하나가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강국이 된 이유를 추적하는 기사였다. 영업이익률 40%를 넘는 고부가 가치 산업에 미국과 일본이 왜 한국에 순순히 주도권을 넘겨줬느냐는 문제의식이 깔렸다. 기사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반도체 산업을 사실상 포기한 것처럼 묘사한다. 그 이유로 반도체 생산에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선진국이 반도체를 위험한 산업으로 인식하면서 투자에 머뭇거렸고, 결국 제3국인 한국이 혜택을 봤다는 논리였다. 1970년대 이후 미국 메모리 반도체 공장이 급속히 줄고 일본이 메모리 생산 기지로 급부상한 것과 일본이 10년도 안 돼 메모리 강국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주도권을 넘겨준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다.

메모리 반도체 실적 호조로 한국 경제성장률이 상향 조정되는 시점에서 제기된 이 기사는 반향이 컸다. 기사를 읽어 본 일반인은 '반도체 강국 뒤에 숨겨진 어두운 진실'이라며 페이스북으로 기사를 공유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반도체 공장 직업병' 문제도 다시 부각됐다.

반면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라고 일침을 놓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사 논리대로라면 반도체 종주국 미국에는 반도체 공장 수가 한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적어야 한다고 반문했다. 위험한 산업을 제3국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오히려 반도체 기업과 공장이 더 많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미국에는 인텔, 텍사스인스투루먼트, 마이크론 등 여러 반도체 기업이 한국보다 많은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문제의 기사는 반도체 산업을 메모리 하나로 한정짓는 오류를 범했다. 비메모리로 불리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간과했다. 원뿔을 정면에서만 보고 삼각형이라고 주장한 것과 비슷한 오류에 빠진 셈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일부 사실만을 근거로 한 '객관화된 주관'이 넘쳐난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묘하게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반도체 환경 이슈뿐만이 아니다. '탈 원전 공방'도 비슷한 양상이다.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국가 경제를 파탄 낼 수 있다. 원뿔을 삼각형이라고 우기고, 또 한편에선 원이라고 주장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국가 미래를 좌우할 이슈일수록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검증하고 검증해도 의문이 남는다면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주장한 것처럼 '판단 중지'라는 방법론이라도 취해야 한다. 가짜 뉴스에 속아 나라가 거덜 나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현명하다. 두부 자르듯 신속하고 명쾌한 결론일수록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그래야 속지 않는 세상이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