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상한 나라의 게임 규제

김시소 기자
김시소 기자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하죠.” 성인게임 결제 한도 자율화를 놓고 한 정부 관계자가 털어놓은 소회다. 진작 해결했어야 하는 규제지만 여기저기 '훈수'가 많다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성인 게임을 출시하면 계정당 월 결제 한도가 50만원으로 제한된다. 똑같은 게임을 모바일로 출시하면 이용자는 하루에 수백만원을 쓸 수 있다.

구글, 애플 등에 출시하는 게임은 청소년 등급도 결제 한도를 따로 설정하지 않는다. '온라인' '성인' 꼬리가 붙은 게임에만 따라붙는 규제다. 심지어 법에도 명시하지 않은 결제 한도 제한을 업계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강제로 적용한다.

우융보 중국 유엘유게임 대표는 지난해 열린 추계 게임학회 학술대회에서 한국의 성인게임 결제 한도 규제를 두고 '엉터리'라고 지적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게임으로 인한 과소비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막는 취지라면 플랫폼을 막론하고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거가 명확한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 이를테면 범죄 예방을 위한 '심야 통행금지법', 국민건강을 위한 1인당 '월간 음주량 제한법'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성인게임 결제 한도 규제는 과감히 풀어야 한다. 한국은 이 당연한 이야기가 몇 년째 공회전을 반복한다.

정부와 기관, 국회 어디도 총대를 메려는 곳이 없다. 격론 끝에 내린 결론은 늘 “사회 합의가 더 필요하다”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게임은 필요악'이라는 인식이 퍼져있는 탓이다. 기존 규제를 풀었을 때 혹시 모를 여론의 질타를 피하기 위한 꼼수다.

'왜 이런 규제를 유지해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원론으로 돌아가 보자. 민주 사회에서 규제는 사회에 미칠 부작용을 막기 위한 예방 주사이자 안전장치다. 부작용이 심각하다면 이를 강화해야 한다. 규제가 시대착오라거나 효과가 없다면 과감히 없애든지 제대로 작용하도록 고쳐야 한다.

게임 규제 문제를 논의하는 '민관 합동 게임제도 개선 협의체'가 발족했다. 성인게임 결제 한도 자율화 문제부터 공론화했다. 새 정부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

김시소 게임 전문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