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5>남자의 손수건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5>남자의 손수건

1970년대 영화에는 손수건이 자주 등장했다. 여자가 눈물을 흘리면 남자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여자는 손수건을 세탁해 곱게 다림질한 후 남자에게 돌려주었다. 손수건은 둘의 오작교였다.

또 다른 신파극. 남자가 다쳤다. 여자는 하얀 손수건을 꺼내 상처 부위를 감쌌다. 남자는 여자의 손수건을 평생 간직하며 여자를 잊지 못한다. 손수건은 애정의 복선이었다.

어머니는 다림질 후 여열로 아버지의 손수건을 정성껏 다렸다. 어머니가 건넨 손수건은 아버지의 자존심처럼 빳빳하고 깨끗했다. 아버지가 시작한 사업은 1970년대 초 유류파동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자금이 회수되지 않아 거래처를 일일이 돌며 미수금을 받으러 다니셨다.

하루는 어머니가 빨랫감에 아버지 손수건이 없는 것을 보고 잃어버렸냐고 물었다. 미수금을 받으러 간 아버지는 거래처 사장이 돈을 갚을 수 없다며 울음을 터뜨리자 손수건을 건네주고 왔노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다음날, 잘 다려진 손수건과 아버지의 점심 도시락을 손에 쥐어 주었다.

아버지 손수건은 시중에서 파는 그것이 아니었다. 무명천을 사다 만든 수제 손수건이었다. 무명천을 삶아 빨고 적당히 말린 다음 보자기에 싸서 발로 밟았다. 그런 다음 다듬이 방망이로 쳐내어 부드러워진 천을 자로 재 손수건 여러 개를 만들었다. 가장자리는 실이 풀리지 않게 일일이 시침질로 마감했다. 하얀 손수건에 아버지는 코를 풀고 손도 닦고 입도 훔쳤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5>남자의 손수건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무명 손수건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신사의 품격'이었다. 아버지를 신사로 만들고 싶어 했던 어머니는 다림질에 정성을 기울였다.

얼마 전,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금융 컨설팅을 하는 M대표와 미팅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던 중 종업원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마시던 커피가 바지 위로 튀었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반듯하게 다려진 손수건을 꺼내 커피를 닦아냈다.

“손수건 가지고 다니는 남자 오랜만에 봐요” “총각 때는 어머니가, 결혼해서는 죽은 제 아내가 항상 챙겨주던 건데 지금은 딸애가 챙겨주더라고요. 손수건이 제 부적처럼 돼버렸어요. 하하” 깔끔한 성격을 어머니와 죽은 처, 딸의 공으로 돌리는 그에게서 신사의 향이 났다.

한때, 손수건 선물은 연인 간 이별을 의미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연애시절 남편은 항상 손수건을 지니고 다녔다. 그에게 필수품이었다. 넥타이, 지갑, 벨트로 이어지는 선물 사이클이 지겨웠지만 행여 속설이 들어맞을까봐 손수건은 선물하지 않았다.

아들만큼은 신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손수건을 건넸다. 아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에이 어머니, 요즘 누가 손수건을 가지고 다녀요. 귀찮아요.”

음식점 식탁 위에서 하얗게 표백된 휴지가 손님의 입술을 기다린다. 주유소에선 회사 로고가 박힌 휴지가 공짜인양 대량 공급된다. 공중 화장실에는 에어드라이어나 종이 수건이 물 묻은 손을 반긴다. 첫사랑 그녀가 건네주던 향기품은 손수건은 이제 구시대 유물이 됐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입관식에서 이희호 여사는 “동행”과 작별편지, 손수건을 관에 넣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여사의 손수건을 '다시 만나자'는 의미로 해석했다. 47년 동행한 남편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5>남자의 손수건

이별의 손수건은 눈물이 많던 시절에 만들어낸 이미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손수건을 정성스럽게 다렸을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 오세요, 힘내요 여보.”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