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칼럼] 그 많던 버찌를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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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A 칼럼] 그 많던 버찌를 누가 다 먹었을까?

박정래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강의교수

이른 무더위 끝에 갑자기 반가운 장마가 걸렸다는데, 7월초 부분적으로 집중된 폭우로 많은 흔적이 지워졌다. 마른장마로 아직 가뭄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역도 있지만, 심한 갈증으로 기다리던 비에 대한 간절한 기대가 사라졌다. 장맛비가 시원하게 내리면 더위가 좀 가시지 않을까 혹시나 하던 시원함에 대한 기대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습기를 안고 쏟아지는 폭염은 우리를 더욱 괴롭히고, 모두 에어컨이나 선풍기에 의지해 넘는 밤이 늘어났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 채기 어려운 것이긴 한데, 벚나무가 가로수로 있는 대로나 캠퍼스, 광장, 호수주변 등에 흉하게 굴러다니던 빨강, 검정 버찌와 도로위에 뭉개진 그들의 슬픈 멍 같은 흔적이 사라진다. 말하자면 자연의 변화는 한 계절의 잔해를 슬며시 지우고, 본격적으로 또 다른 계절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다시 그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우리의 봄은 가히 벚꽃소식 따라 깨어나고 환생하는 봄이라 할 수 있다. 잎이 나오기도 전에 화사하게 폭발하듯 개화하여 온 세상을 뒤덮을 듯 꽃눈처럼 날리는 장관은 벚꽃군락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축제’라는 이름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치 새로운 한 해의 다짐과 출발을 화끈하게 꽃피우고 날아보라고 부추기듯이 말이다. 벚꽃 개화시기를 따라 남도 진해의 군항제로 시작하여, 서쪽으로 하동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벚꽃, 섬진강 벚꽃축제, 동쪽으로 부산 낙동강, 경주 보문호, 대구 팔공산, 강릉 경포대, 중부의 제천 청풍, 용인 에버랜드 등의 벚꽃축제를 거쳐 서울의 석촌호수나 윤중로의 벚꽃나들이가 시작되면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 즈음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란 노래가 어디서나 들리고, 봄바람 휘날리며 알 수 없는 거리를 걷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흩날리던 벚꽃 잎들은 고단한 삶과 생활 속의 발끝에 치이다가 슬며시 사라지고 만다.

트렌드이다. 트렌디한 놀이, 트렌디한 패션, 트렌디한 화장, 트렌디한 유행어, 트렌디한 소비처럼 봄의 벚꽃놀이도 우리에게 하나의 트렌드가 아닐까? 왜냐하면 트렌드는 굳이 어떻게 시작하였고, 그 끝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갑자기 세상 앞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이끌고 나가는 어떤 대세, 대중적인 쏠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요즘 국내외 정세나 저성장의 경제, 디지털로 포장된 우리들의 일상, 싱글가구, 혼족과 같은 외로움의 득세, 가계부채와 신용카드로 인한 마이너스 삶 등이 불확실성을 가속하며 그 끝을 책임지지 않는 트렌드 추종자가 된 듯해서 말이다. 마치 벚꽃 개화일정에 따라 무조건 환호하고 아우성치며 북상하는 벚꽃축제를 닮아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을 따라 면소재지 시골 작은 초등학교로 전학한 적이 있었다. 몇 안 되는 선생님이나 빼꼼하게 가정이력이 다 드러난 학생들이나 모두 한 식구 같았는데, 그 해 봄 외팔이 교장선생님이 새로 전출해 오셨다. 그 분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전혀 거리낌 없이 흥과 끼가 넘치셨고, 부임하자마자 상상하지 못했던 두 가지 일을 벌이셨다. 하나는 자그마한 교정 한편에 가설무대를 만드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학교 주변 곳곳의 유실수에 거름을 돋우고 지극정성으로 가꾸는 일이었다. 가설무대는 교장선생님이 외팔로 손수 돌을 나르고, 흙을 메우고, 앞장서는 덕분에 두 달 만에 완공이 되었고, 일일이 가꾼 유실수 중에 가장 먼저 탐스런 꽃을 피운 것은 학교로 올라가는 길에 놓여있던 아름드리 벚나무였다. 아침마다 싱그러운 안개 속에 흩날리는 별똥별 같은 벚꽃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서먹했던 나의 낯설음을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외팔이 교장선생님은 그렇게 벚꽃이 절정인 어느 날 가설무대에서 전교생 학예발표회를 열었다. 그 때까지 우리가 익힌 악기연주, 노래, 시낭송, 연극, 춤과 장기자랑 등 시골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작은 운동장은 왁자지껄한 한바탕 흥겨운 잔치마당이 되었다. 학예발표가 끝난 뒤, 가설무대를 중심으로 전교생과 학부모, 이웃 주민과 선생님들이 함께 웃고 떠들며 준비해온 소박한 음식들을 나누었다. 물론 뉘집 애들이 잘 하더라 소근대며 학예발표회 스타들에 대한 뒷이야기로 함박웃음을 피웠다. 그 때 운동장에 휘날리던 벚꽃이 얼마나 아름답고, 곱고, 향기로운지....

그 뒤로 나는 이 보다 즐거웠던 축제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진정 잊을 수 없는 추억은 그로부터 한 달 보름쯤 뒤에 벌어졌다. 어느 날 등굣길에 보니, 벚나무마다 그 아래 커다란 멍석을 깔고 흑염소 눈동자같이 검고 데글데글한 버찌를 터는 것이었다. 학교소사(지금의 기사)님은 일일이 나무마다 장대질을 하고, 멍석마다 버찌가 산처럼 수북하게 쌓였다. 외팔이 교장선생님은 전교생을 쉬는 시간마다 벚나무 아래로 불러 아이들이 먹고 싶은 만큼 버찌를 먹게 해주었다. 군것질이라는 용어조차도 없던 시골학생들에게 그 버찌는 난생 처음 맛보는 달콤한 과자였고, 간식이었다. 물론 손은 검게 물들고, 장난삼아 서로의 얼굴에 버찌 먹칠을 하고, 웃고 깔깔대고 장난치고.....

가로의, 도시의, 축제현장의 벚꽃이 날리고 질 때보다, 여름이 되기 직전까지 열매를 힘겹게 매달고, 키우고, 어렵게 익힌 버찌가 천덕꾸러기처럼 버려지고 잊혀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슬프다.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은 아무 느낌 없이 떨어진 버찌를 밟고 뭉개며 지나가고, 버찌의 무른 가슴이 터져 거리에는 검은 혈흔을 그대로 남긴다. 어쩌다 짙은 잎 사이에 숨어있는 버찌를 따 먹어보아도 어렸을 때 그 맛은 아니고, 마치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 장식품 같이 그렇게 덩그러니 버려진다.

트렌드. 벚꽃축제도, 우리의 화려한 외형상의 성장과 발전도 트렌드이다. 트렌드가 다른 트렌드를 잡아먹고, 또 다른 트렌드를 낳는다. 트렌드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어떤 열매가 맺혔는지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 나간다. 장마비가 슬프게 얼룩진 또 한 해 버찌의 흔적을 깨끗이 세탁한다. 또 한해 뜨거운 여름이 넘어야할 장승처럼 다가와 있다. 지난 어린 시절, 그 아름답고 달콤하고 향기롭던 유혹, 흑염소 검은 눈동자처럼 데글데글한 버찌를 도대체 누가 다 먹어 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