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만만한 배터리는 찬밥…정책 불이익 이어져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중국이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관련 생태계가 급속히 커지고 있지만 한국 배터리 업체는 완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공신부는 올해 여덟 차례에 걸쳐 '신에너지 자동차 추천 목록'을 발표하면서 184개사 2538개 모델을 추가했지만 한국 기업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은 단 한 대도 포함되지 않았다.

사양이 거의 동일한 시리즈 모델 가운데 LG화학과 삼성SDI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만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차별이 노골화되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가 지난해 6월 중국 정부의 4차 배터리 모범 규준 인증에서 탈락하면서 차별은 시작됐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사드 배치와 관련해 공식 협의를 시작한 시점이다. 이후 업계는 5차 인증을 준비해 왔지만 현재까지 심사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자국 배터리 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이 더해진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산요에너지와 AESC 등 일본 업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는 보조금 목록에 이름을 올리면서 사드 배치 보복 정황에 더욱 의심이 가는 상황이다.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업체 피해는 커지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의 경우 하반기부터 중국 전기차용 배터리 판매가 중단되면서 난징과 시안에 위치한 현지 배터리 공장 가동률이 한 때 10%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들 업체는 중국 공장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와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저압 배터리, 하이브리드차(HEV) 배터리, 한국 수출 물량 등을 집중 생산하면서 가동률을 회복한 상태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협력사도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해 가동률이 10% 수준으로 떨어지고 현지 직원을 해고할 수 없어 계속 임금을 주며 사업을 유지하다 보니 손해도 크다. 일부 업체는 현지에 파견한 임직원들을 국내로 복귀시키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서서히 줄여 2020년까지 완전히 폐지한다는 방안”이라면서 “여러 방안을 고민했지만 2020년이 되면 한국과 중국 업체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그때까지 몇 년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자구책을 찾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무엇보다 배터리 산업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이 근본 문제로 지적된다. 상황 타개를 위해서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처럼 기술 초격차를 벌리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분석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차세대 장비 개발이 선행돼야 하고, 기본으로 조원 단위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에 비해 배터리 산업은 소형의 경우 라인당 450억원, 자동차용 배터리는 1000억원 수준을 투입하면 생산 라인을 갖출 수 있어 후발 주자 진입이 다소 유리하다”면서 “중국이 전기차와 배터리를 적극 육성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에는 3000여개 배터리 생산 업체가 존재하고, 그 가운데 삼성SDI나 LG화학 정도 몸집을 갖춘 곳만 5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새로운 소재 구성을 통해 한 번 충전으로 더 오래 갈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R&D)에 나서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는 중국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배터리 원재료인 광물 자원 확보, 신소재 개발, 규모의 경제를 위한 내수시장 확대 등 원가 경쟁력을 혁신할 수 있는 방안도 지속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