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늘리라면서 규제는 산더미, 속 끓는 유통업계

유통업계가 강화되고 있는 정부규제에 속앓이 중이다. 동반성장·상생을 이유로 규제는 늘어나는 가운데 일자리는 늘려야 한다는 부담은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 정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계속되는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해도 너무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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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복합쇼핑몰 등 대형쇼핑시설에 대한 초강력 규제를 총망라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마련해 이달 내 국회에 발의할 예정이다. 법안의 골자는 복합쇼핑몰이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대상에 포함되며 대규모 유통시설에 대한 출점은 도시계획단계에서부터 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20대 국회 개원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총 28건의 유통법 개정안 중 상당 내용을 한데 모은 '규제 통합안(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 예정)'이란 점에서 그 파급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현재 계류 중인 유통법 개정안은 △의무휴업일 월 4회로 확대 △등록제에서 허가제 변경 △마트 첫 계획 단계부터 지자체 심사 △인접 지자체와 합의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관련 법안 추진에 앞장서고 있지만, 정작 영업·출점 제한이 전통시장을 살리는데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대형마트·백화점 영업시간 규제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전통시장의 매출은 제자리걸음이다. 전통시장 당 매출은 2012년 하루 평균 4755만원에서 2013년 4648만원으로 줄었다. 2015년 4812만원으로 늘었지만 2012년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

전통시장 방문자가 백화점와 대형마트 휴무일보다 영업일에 더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단법인 '이(E) 컨슈머'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 광장시장, 광주 양동시장 등 5개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주변 1㎞ 안팎에 대형마트·백화점이 있는지와 영업·휴일 사항을 중심으로 실제 방문자수를 비교한 결과 의무휴무일보다 영업일에 최대 957명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점이 제한된 상황에 일자리를 늘리라는 정부의 요구도 업계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신규 출점이 곧 일자리 창출로 직결되는 것이 유통업계 특성이다. 대형마트 1개 점포가 출점할 경우 최대 800명, 복합쇼핑몰은 수만 명의 직·간접 고용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근접출점 제한 등의 영향으로 출점이 줄어든 상황에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유통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까지 추진한 규제가 전통시장이나 중소상인들의 매출 증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미 없는 규제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유통업계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비효율적인 규제만 남발하고 있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형유통시설 내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유통시설 내에 입점했다는 이유로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받고 있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한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논리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생의 필요성과 규제 의도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규제로 인한 실효성이 검증 되지 않은 상황에 업계를 옥죄기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 정책방향에는 따르겠지만 기업 현장의 어려움도 헤아려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주현 유통 전문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