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술수출 승인위원회 재구성...LGD OLED 中 진출 불허 포석?

정부가 LG디스플레이의 중국 8.5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진출 승인 신청을 받은 뒤 이례로 별도의 전문 심사위원회를 구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 국가 핵심 기술의 수출 승인 심사에는 정부가 지정한 14명의 전기전자 전문위원진 의견을 수렴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문성이 낮다'는 이유로 디스플레이 전문가 중심의 소위원회를 별도로 꾸렸다. 사실상 중국 OLED 진출을 불허하거나 최대한 승인을 늦추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LG디스플레이가 중국 광저우에 8.5세대 OLED 생산 공장을 짓기 위한 수출 승인을 심사하기 위해 별도의 소위를 꾸렸다.

OLED는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있다. 정부 연구개발(R&D) 자금이 투입된 국가 핵심 기술을 수출하려면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상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는 수출 승인 심사 때 14명으로 구성된 전기전자 전문위의 의견을 듣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문위가 아닌 6명 규모의 별도 소위를 꾸리기로 했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이 “기존 전문위에 디스플레이 전문가가 부족하다”며 디스플레이 전문가 중심의 별도 소위 운용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등의 도움을 받아 소위 구성원을 꾸리고 있다. 아직 참여 인원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례처럼 국가 핵심 기술의 수출 심사를 위해 별도의 전문위를 구성한 경우는 선례가 없다. 정부는 디스플레이 전문가 중심의 소위에서 현지 생산 시 기술 유출 가능성 등을 좀 더 꼼꼼하게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별도 소위를 구성한 게 사실상 LG디스플레이 OLED의 중국 진출을 '불허'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백 장관 부임 이후 각 산업계에 걸쳐 중국 투자를 재고하라는 분위기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18일 열린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 간담회에서도 중국 진출을 재검토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간담회'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렸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산업통상자원부-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간담회'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렸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실제로 LG디스플레이 OLED의 중국 진출은 신청한 지 두 달 가까이 됐지만 아직 기술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LG디스플레이가 산업부에 중국 진출 승인을 요청한 시점은 7월 말이지만 전기전자 전문위가 열린 것은 이달 초다. 이제 소위를 꾸려서 심사를 시작해야 한다.

정부는 원칙상 승인 신청을 받으면 45일 이내에 심사를 완료해야 한다. 기술 심의 기간은 제외한다는 정부 방침을 반영하더라도 최대 석 달을 넘긴 경우는 없었다.

한 관계자는 “기술 심의가 끝나도 이후 관계 부처 합의 등 거쳐야 할 사안이 많다”면서 “적기 투자에 생존이 달린 기업의 특성을 잘 아는 산업부가 차일피일 심의를 미루는 분위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업계는 이 같은 흐름이 기술 유출 문제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으로 인한 중국과의 정치 관계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유통, 관광, 배터리 산업 등이 중국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은 반면에 중국이 기술력에서 뒤지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적극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일종의 중국 압박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내수 진작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생산 공장을 최대한 국내로 유치해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발전 등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과 중국 외교 상황이 맞물린 셈이다.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반도체도 같은 전철을 밟아 중국 진출길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는 OLED 디스플레이와 마찬가지로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있다. 정부 R&D 자금이 투입돼 해외 생산 시설을 갖추려면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반도체는 미세화 공정 기술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승인이 필요하다. 이미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기술이 나갈 경우 '걸면 걸린다'는 것이 정부와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4월까지 약 1조원을 투입, 중국 우시에 신규 D램 클린룸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중국 시안에 약 7조5000억원을 들여 제2기 3D 낸드플래시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 3D 낸드플래시는 정부 자금이 투입되지 않은 기술로, 수출 승인 대상이 아닌 신고 대상이다. 이를테면 통보하고 나가면 됐다. 1기 라인을 지을 때도 삼성전자는 산업부에 신고만 했다. 그러나 반도체는 장비, 공정, 재료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돼 생산된다. 범위를 확대하면 정부 자금이 투입된 기술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승인 대상으로 바뀔 수 있는 셈이다. 이 경우 LG디스플레이와 같은 수출 규제를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지난달 시안 투자를 발표하기 전에 산업부 고위 관계자와 구두 교감이 있은 것으로 안다”면서 “최근 일자리 확대 정책과 중국 사드 보복, 기술 유출 우려 등이 복합되면서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에 관한 정부의 기류가 크게 변했다”고 전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정부가 중국 진출을 막기보다 기업이 기술 초격차 전략을 시현할 수 있는 정책 지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쉽게 쫓아올 수 없는 기술 경쟁력을 갖춰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모두 한국 기업이 주도, 중국이 쉽게 추격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기술을 진화시키고 있다”면서 “단순히 중국 진출을 막기보다는 기업 지원, 인력 육성을 위한 R&D 지원 등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는 기업 생존을 뒷받침하는 파격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날 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장비 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중국 투자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중국 동반 진출을 추진해 온 장비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