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산업단지 미래를 준비하자

우리 제조업의 활력이 저하되고 있다. 올 2분기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71.6%로 2009년 금융위기 이래 최저치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에 우리 경제를 견인해 온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력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뚜렷한 미래 신성장 동력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에선 독일, 미국 등을 중심으로 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과 같은 디지털 혁신 기술이 제조업에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산업현장에는 이러한 신기술의 활용과 보급이 더디다. 올 4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소기업의 13.9%만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있다. 스마트 공장도 아직은 기초 수준을 중심으로 보급되는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제조업의 어려움과 4차 산업혁명의 지수적 변화를 동시에 맞고 있는 상황이다.

황규연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황규연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이러한 위기를 우리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바꿔나가자. 그 출발은 산업단지를 혁신하고 지능화하는 것이다. 산업단지를 떼어놓고 제조업과 우리 경제의 미래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 1,158곳의 산업단지는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의 69%, 수출의 74%, 고용의 50%를 차지한다. 산업단지를 적시에 지속가능한 성장 공간으로 환골탈태시키느냐에 우리 경제와 제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사례를 보자. 1960년대 중반부터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중심으로 번영했던 산업단지는 1980년대 후반 산업환경의 변화로 공동화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획기적인 규제 완화와 민간 투자유치를 통해 오늘날의 IT벤처 밸리로 탈바꿈했다. 신산업에 맞는 산업단지로 전환한 것이 나락에서 부활로 이끈 것이다. 이처럼 제조업의 위기는 차세대 산업을 육성할 또 다른 기회다. 걸림돌이 되는 규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 신산업의 진입 장벽은 낮추고 기존 산업과의 융합은 쉽게 이뤄지도록 하자.

노후 산업단지의 리모델링도 확대돼야 한다. 이젠 새로 산업단지를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의 주력 산업단지를 재활용하고 활성화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획일적인 생산 중심의 공간은 젊은 인재들에게 매력적인 혁신, 지원, 편의성을 갖춘 복합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구조고도화 사업을 통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마중물 효과를 얻기 위해선 민간의 참여와 호응이 더 절실하다.

스마트화도 시급하다. 스마트 기술은 중소기업이 단숨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스마트 공장이 늘어나고 산업단지가 스마트 환경으로 전환해야 한다. 스마트 시티처럼 디지털 기술로 연결된 산업단지를 만들자. 안전, 환경, 에너지는 물론 생산, 물류, 판매까지 모든 영역에서 산업단지와 기업 경쟁력을 배가시킬 것이다.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하청구조는 중소기업의 자생력과 산업 생태계를 약화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가치사슬로 연계된 중소기업들이 수평적 관계로 뭉치는 네트워크형 협업을 보다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등 지역의 혁신 주체들이 산업단지에서 지능정보기술과 융합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을 테스트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개방적 협업 자세를 갖추고 모험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실리콘밸리형 기업가 정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지난 10여 년간 발생한 두 차례의 세계 경제위기는 제조업이 혁신의 원천으로서 새롭게 재조명 받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중서부의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도시)' 부활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중국은 '인터넷 플러스' '제조 2025', 독일은 '플랫폼 인더스트리 4.0'과 '하이테크 전략 2020' 등을 통해 제조업 혁신에 나서고 있다. 일본도 '신산업구조비전', '국가전략특구' 등을 통해 제조업 리쇼어링에 성공하고 있다. 세계가 산업집적지를 중심으로 실물경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도 신발끈을 고쳐 매고 혁신 선두 국가그룹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모두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황규연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qhwang1@kicox.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