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상현실(VR), 캐즘에 빠졌나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최근 국내 정보기술(IT) 산업계의 최대 키워드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이다. 우리 사회가 유난히 트렌드에 민감하지만 이건 좀 지나친 것 같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가상현실(VR)'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VR 원년을 외치며 미래 변화에 열광한 게 바로 지난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VR가 앞으로 5년 안에 주류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VR 원년답게 지난 한 해 동안 중요한 기술 진보와 함께 HTC의 바이브, 오큘러스리프트의 소비자 버전 제품,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 삼성 기어 VR, 구글 데이드림 등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헤드셋이 대거 출시됐다.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360 카메라 역시 다양하게 나왔다.

수많은 하드웨어(HW)와 신규 콘텐츠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VR가 보이지 않는다. 카페에서, 역과 지하철에서 HMD를 쓰고 있거나 VR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사람들이 캐즘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캐즘은 첨단 기술 제품이 초기 시장에서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기까지 사이에 겪는 일시 수요 정체 또는 후퇴 현상을 계곡에 빗댄 말이다. 캐즘에 빠진 대표 사례가 3D TV다. 3D 영화 아바타 덕분에 열광한 것도 잠시뿐 가정에서 3D TV 콘텐츠를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에 스마트폰은 앱스토어 유통 체계와 게임을 비롯한 수많은 콘텐츠 덕분에 캐즘을 탈출,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주류 시장으로 성장하는데 TV가 약 30년, 모바일폰이 15년 걸린 것에 비춰 볼 때 벌써부터 VR 캐즘을 논한다는 것은 다소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캐즘을 넘기 위해서는 얼리어답터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얼리어답터가 제품에 불평을 쏟아내면 캐즘을 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런데 VR에 이들의 불평은 차고 넘친다.

몇 년 동안 학생을 지도하면서 졸업 작품으로 VR 게임을 개발해 보니 VR 기술의 한계점이 너무나 명확하다. HTC 바이브 HMD를 PC에 연결하고 기본 프로그램을 실행하기까지 거의 두세 시간이 걸린다. 연결 케이블은 불편하고, 헤드셋은 착용에 거부감이 있다. 조금 플레이하다 보면 HMD 무게 탓에 목이 뻣뻣해지고, 이와 함께 머리에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모바일 VR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을 HMD에 끼워 보면 화질이 떨어지고, 금세 스마트폰이 뜨거워져서 이마에 땀이 나고, 배터리도 금방 소모된다.

어지러움 해소나 화질 면에서 기술 개선이 지속되고 있지만 단기간에 VR 기기 사용의 불편함은 해소될 것 같지 않은 게 솔직한 공학자로서의 예상이다.

캐즘을 극복하기 위한 좀 더 체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단기로는 시뮬레이션 또는 트레이닝과 같이 HMD 사용상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기업간거래(B2B) 애플리케이션(앱) 쪽으로 시장 포커스를 이동해야 한다, 여기에서 킬러 콘텐츠가 나와야 한다.

중장기로는 HMD 기기와 관련 주변기기 표준화에 힘써야 한다. 기기 기능 미숙함과 콘텐츠도 부족한데 각종 기기마저 콘텐츠 호환이 잘 이뤄지지 않고, 상호 연결 방식 역시 제각각이다.

궁극으로는 HMD와 같이 안경 따위를 쓰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VR를 즐길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 결국 VR 한계를 인정하고 증강현실(AR)과 함께 혼합현실로의 방향 전환 모색도 필요하다. AR는 VR보다 일단 장비가 가볍고, 어지러움에서 다소 자유롭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홀로렌즈에서 볼 수 있듯 홀로그래픽 기술을 전략 차원에서 발전시키는 것도 고려 대상이다.

VR는 1991년 세가의 VR 기기와 1995년 닌텐도 버추얼 보이의 사례에서 보듯 이미 캐즘 계곡에 빠진 전력이 있다. 당시 HW는 성능이 절대 낮았고, 시장은 너무 적었다.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VR의 세 번째 캐즘 탈출 시도를 응원해 본다.

[기고]가상현실(VR), 캐즘에 빠졌나

이대현 한국산업기술대 게임공학과 교수 daehyun.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