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ICT 장비산업 5대 강국 꿈...오히려 후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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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장비산업 경쟁력이 4년간 뒷걸음질 쳤다. 정부가 'ICT 장비 5대 생산강국'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생산규모와 일자리 수가 줄었다. 강소기업 목표 수도 달성하지 못했다. 해외시장을 겨냥한 장비 개발에 1000억원 넘게 투입했지만 납품실적은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정부는 2013년 8월 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정보통신 최강국 달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ICT 장비산업 경쟁력 강화전략'을 수립했다.

1999년 시작된 ICT 인프라 강국 추진계획이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인프라를 구축하는 핵심장비 대부분이 외산이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장비는 32%, 방송장비는 75%, 컴퓨팅장비는 86%가 외산이었다. 중국 화웨이 등 외산 장비가 2007년부터 국가정보통신망 장비시장을 잠식함에 따라 외산의 시장독점, 네트워크 보안성 우려 등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2017년까지 국내 ICT 장비산업을 생산액 10조7000억원, 글로벌 강소기업 15개사, 일자리 7만4000명 규모로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수립, 세계적 정보통신기술장비(World-Class ICT Equipment·WIE)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유망 장비 22개 개발을 위해 총 1139억4400만원을 투입했다.

ICT 장비산업 생산액과 생산규모는 오히려 2013년보다 후퇴했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과기정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9조3446억3700만원이던 방송장비 생산규모는 2016년 7조2715억3000만원으로 2조원 넘게 줄었다. 같은 기간 네트워크장비는 3000억원, 컴퓨팅장비가 1조9000억원씩 감소했다.

일자리수도 2013년 18만9493명에서 지난해 18만7933명으로 2000명가량 감소했다. 매출액 400억원, 수출비중 20% 이상인 강소기업은 4곳에서 13곳으로 늘었지만 당초 목표치(15개사)에 미달했다.

올해까지 1139억4400만원을 투입한 WIE 프로젝트 후보 장비 22개 중 해외사업화와 해외업체에 납품된 실적은 2건에 불과했다. 54억원이 투입된 '4G/5G 소형셀 기지국 및 게이트웨이장비'와 39억1300만원이 든 '4K·8K HEVC 소형인코더'다. 국내 납품 실적 5건 중 1건은 평창동계올림픽 시연용이며, 1개 프로젝트는 취소됐다.

송 의원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ICT장비 산업을 살리기 위한 정부 정책의 성과가 굉장히 미흡하다”라면서 “관련기술 개발에 이어 상용화, 수출까지 이어지도록 체계적인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인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국산 ICT 장비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공공기관부터 국산 제품을 믿지 않고 외산 제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여전하다. 국산 업체는 영업력과 생산량 등 규모의 경제에 밀리는데다 발주처 가격 후려치기와 출혈경쟁에 시달리며 신기술 투자를 하지 못한다. 결국 외산 대비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술개발 노력을 게을리한 국산 업체 잘못도 분명하다.

발주처 가격 후려치기를 막기 위해서는 유명무실한 대중소 상생위원회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기관 국산 제품 사용을 늘리려면 제품 구매 후 문제가 생기더라도 고의가 아닌 이상 담당자 책임을 묻지 않는 제도도 필요하다. 근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단기 성과를 위한 예산 투입보다 기술력 강화를 위한 장기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안영국 정치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