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9>키스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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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Kiss) 명장면, 늘 이 작품이 떠오른다. 1953년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다. 데보라 카와 버트 랭커스터가 하와이 아이코닉 해변에서 파도 속에서 벌이는 격렬한 키스신은 두고두고 기억이 남는다. 말보다 강력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이 영화를 봤을 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어른이 되면 저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멋진 남자와 뜨거운 키스를 하겠노라 결심했다.

이성에게서 경험하는 첫 스킨십이 입맞춤이다. 사춘기에 경험하는 키스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사춘기 키스를 황홀하게 만드는 것은 뇌호르몬인 '키스펩틴(Kisspeptin)' 덕분이다. 이 호르몬은 사춘기에 분비되면서 인간 생식기능을 활성화한다. 처음이라 짜릿한 줄 알았는데 원인은 키스펩틴 활동 때문이란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성에 관심 갖는다고 타박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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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배우는 감정 몰입도가 베드신보다 키스신이 훨씬 높다고 고백했다. 베드신은 연기라는 자기주문을 거는 반면에, 키스신은 상대가 진짜 연인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 감정이입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집중도 때문이다. 런던 할로웨이대 심리학 연구팀의 논문 '인간의 지각과 행위'에서 키스 몰입도를 잘 설명한다.

'키스할 때 눈을 감는 이유는 우리 뇌가 촉각보다 시각 자극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눈에 무엇인가 보이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떤 자극에 집중하고 싶을 때 눈을 감아 시각적 입력을 차단하는 것이다.'

일주일 전 일이다. 한 쌍의 연인이 동네 카페 한 구석에서 키스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힐끗거리며 쳐다보건 말건 정지된 화면처럼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 참 좋아졌구나. 은밀한 둘만의 언어라고 생각했던 키스를 공공연한 곳에서도 하는 날이 오다니.'

70대 할아버지가 손주를 데리고 카페에 왔다. 그들을 보더니 핀잔을 주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요? 여긴 애들도 오는 곳인데 둘이 이상한 짓 하려면 몰래 다른 곳에 가서 해요, 애들 교육에 안 좋아요!”

연인은 한동안 멀뚱하게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짓이라니?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둘은 미안하거나 창피한 기색 없이 도리어 별 참견 다한다는 듯 눈을 흘기고 자리를 떴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언어였지만, '남녀칠세부동석' 세대인 할아버지에게 키스는 언어가 아닌 육체 활동이었다.

어르신이 '애들 보는 데'서 '이상한 짓'은 '몰래 가서' 하라고 한 건 키스를 성관계 전희쯤으로 여긴 탓이다. 어르신만이 아니다. 일부 남성들은 키스로 성이 안 찬다. 키스로 깊은 교감을 갖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종종 관계를 망치곤 한다. 키스를 침실에 국한한 육체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한 '교육상 불건전한 행동'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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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는 사람 간에 라포(Rapport)가 형성되는 강렬한 비언어 행위 메시지다. 아가의 눈을 바라보고 볼에 입맞춤 하는 엄마의 신체접촉은 원초적 유형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신체접촉을 하면 상대방과 친밀감을 느끼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안아주고 포옹하고 입맞춤하는 행위는 상대의 관심을 우호적으로 자각하는 초기 설정인 것이다.

키스는 언어다. 욕망이 아닌 언어로 표현될 때 키스의 전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감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유대감을 충족시킨다. 키스에는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존중한다는, 영원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그것이 키스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