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M&A와 기술 유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캐니언브리지캐피털파트너스는 얼핏 미국의 유력 투자 회사인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사의 본사는 중국 베이징이다. 이사회 멤버 대부분이 중국계다. 캐니언브리지는 최근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회사인 레티스를 인수하려다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대에 부닥쳐 결국 실패했다. 미국 정부 기관인 대미외국투자위원회(CFIUS)는 중국 자본이 래티스를 인수하면 군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캐니언브리지는 최근 반도체 설계자산(IP) 시장에서 ARM과 경쟁하는 영국 이매지네이션을 인수합병(M&A)하기로 합의했다. 이매지네이션은 그래픽처리장치(GPU) IP가 주력인 회사다. 애플이 주 고객사였다. 그러나 애플이 독자 GPU IP를 개발하기로 하면서 주가가 폭락했고, 결국 시장 매물로 나왔다. 이매지네이션은 영국 회사지만 중앙처리장치(CPU) 사업부인 밉스(MIPS) 사업 소재지는 미국이다. MIPS 사업은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 있는 탤우드벤처캐피털이 가져가기로 했다. 그러나 탤우드 역시 중국 남부 우시에 사무소를 두고 있어 중국 자본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사실이라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M&A를 막을 가능성이 짙다.

이에 앞서 중국 자본은 필립스 조명 사업 부문인 루미레즈, 엑시트론의 원자층증착(ALD) 장비 사업 부문을 인수하려 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엑시트론 ALD 장비 사업은 한국 유진테크가 인수했다.

최근 한국 정부는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에 부정 견해를 보이고 있다. 기술 유출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정부가 정말로 신경 써서 들여다봐야 할 분야는 M&A다. 중국 BOE가 액정표시장치(LCD) 시장 출하량 1위 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 것은 과거 현대전자에서 떨어져 나온 하이디스를 헐값에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탈탈 털린 그 회사는 다시 대만으로 재매각됐다. 한마디로 토사구팽 당했다.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은 사업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과도한 규제는 역효과를 낸다. 그러나 아예 발을 빼기 위한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부 연구개발(R&D) 자금으로 발돋움한 회사라면 해외 매각 시 규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여러 팹리스가 중국 자본에 매각됐고, 지금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술 유출의 구멍이 어디인지 제대로 짚어야 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