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구벽 메모리 속도 3배↑…HDD 넘는 차세대 메모리 응용 기대

국내 연구진이 '자구벽 기반 자기메모리' 속도를 향상시켜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 자구벽 메모리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한계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되는 차세대 고집적, 저전력, 비휘발성 메모리다.

김갑진 KAIST 교수, 이경진 고려대 교수 공동 연구팀은 상온에서 자구벽 메모리 속도를 약 3배 높이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17일 밝혔다. 기존 연구에서 자구벽 이동 최고 속도는 750m/s였다. 연구팀은 2㎞/s 이상을 달성했다.

자구벽 기반 자기메모리는 HDD 한계를 극복하는 차세대 저장 소자다. HDD는 전원 공급 없이 정보를 유지하는 비휘발성을 갖췄지만 에너지 소모가 크고 속도가 느리다. 원판을 회전시켜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이다.

자구벽 메모리의 개념도
자구벽 메모리의 개념도

자구벽 메모리는 기계 회전이 아닌 자성 나노선에서 자구벽의 이동으로 동작한다. 자구벽은 N·S극 경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를 이동시켜 HDD의 원판 회전과 같은 효과를 내는 식이다. HDD와 마찬가지로 비휘발성이지만 전력 소모가 적고 안정성도 높다. 저장 용량도 기존 HDD 이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자구벽의 이동 속도를 높이는 게 실용화의 관건이었다. 자구벽 이동 속도가 메모리 동작 속도와 직결된다. 기존에는 속도가 수백 m/s에 머물렀다. 연구팀은 이를 2㎞/s으로 높여 실제 메모리 동작 속도를 향상시킬 방법을 찾았다.

메모리를 구성하는 물질 자체를 바꿨다. 기존의 자구벽 메모리 연구는 대부분 '강자성체'를 사용했다. 강자성체는 물질 내부의 자화(자성을 지니는 현상)가 한 방향으로 정렬된다. 이는 '워커 붕괴 현상'으로 이어져 자구벽 이동 속도를 떨어뜨린다.

페리자성체를 이용한 자구벽 메모리 소자의 개념도
페리자성체를 이용한 자구벽 메모리 소자의 개념도

연구팀은 강자성체 대신 '페리자성체'인 가돌리늄철코발트(GdFeCo) 합금을 썼다. 페리자성체는 인접 자화가 반대로 정렬되고, 크기도 다르다. 연구팀은 특정 조건에서 이 물질의 워커 붕괴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했다. 이때 자구벽의 이동 속도가 급증했고, 상온에서 2㎞/s까지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의 자구벽 메모리에 초고속 동작 특성을 더할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HDD를 뛰어넘는 고집적, 저전력, 비휘발성을 갖춘 차세대 메모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김갑진 교수는 “페리자성체의 각 운동량이 0인 지점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물리 현상을 발견했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차세대 메모리 구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 결과는 물리·재료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게재됐다.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소재디스커버리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