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에너지 전환 정책, 절차상의 정당성 갖췄나

[ET단상]에너지 전환 정책, 절차상의 정당성 갖췄나

최근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로드맵이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통과하고 확정됐다. 에너지 안보라는 큰 틀에서 효율성과 경제성을 추구해 오던 에너지 정책 기조를 바꾸는 고심에 찬 결정임에 틀림없다. 에너지는 한 국가의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 토대를 제공한다. 이런 맥락에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은 대한민국 경제와 국민의 삶 변화를 격발시킨다.

에너지법 9조에 따라 정부는 주요 에너지 정책 및 에너지 관련 계획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소속 에너지위원회를 두고 있다. 에너지위는 에너지 기본계획, 비상계획을 포함해 주요 에너지 정책 및 에너지 사업 조정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한다고 이 법 10조에 명시하고 있다. 에너지위는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부 바깥의 의견을 청취하는 최소한의 통로이자 온전함 및 정당성을 채워 주는 법률 장치다.

이번 에너지 전환 로드맵은 산업부 주도로 작성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심의는 차치하고 내용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위원회도 열리지 않았다.

현재 기후 변화 대응과 에너지 정책 관련 최상위 법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다. 저탄소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청정에너지 사용 및 보급을 확대, 온실가스를 적정 수준 이하로 줄이는 것을 말한다. 녹색기술은 온실가스 감축 기술, 에너지 이용 효율화 기술, 친환경 기술 등 사회·경제 활동 전 과정에 걸쳐서 온실가스와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이는 이 법 2조에 명시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에너지 정책 방향과 다르지 않다. 법 4조에 따르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립 때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 및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 고려해야 한다. 이번에 확정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이 이러한 국가 책무를 어떠한 절차를 통해 다했는지 아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계획도 최종 확정 이전에 법률로 정한 위원회의 심의·의결뿐만 아니라 공청회를 개최한다. 때론 공청회에서 격한 반대에 부닥쳐서 결정이 유보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법률 요건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한된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내용이 확정되기 전에 언론이나 세미나 등을 통해 갑론을박이 이뤄지기도 했다.

물론 애초 정부가 의도한 방향이 뒤집힌 적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양 극단의 주장을 포함,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의견이 표출될 통로는 있었다. 에너지 전환 로드맵은 그런 과정도, 통로도 생략된 채 '확정' 발표됐다.

스위스는 지난 5월 '에너지 전략 2050'을 국민투표로 확정했다. 에너지 전략 2050은 에너지 절약과 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역할 강화, 원전의 점진 철수를 세 기둥으로 하고 있다. 목표는 에너지 안정 공급의 계속 확보라고 설명했다. 2011년 6월 의회가 원전을 점차 폐쇄하겠다는 결의안을 채택한 지 6년 만이다. 그동안 다섯 차례 국민투표가 진행됐으며, 부결될 때마다 내용은 수정 및 보완이 이뤄졌다.

우리도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거나 몇 년은 논의 기간을 둬야 한다는 게 아니다. 원전을 겨우 5기 운영하고 있는 스위스가 탈원전을 결정하면서 왜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요인들을 검토하고 고민했는지 꼼꼼하게 분석하는 한편 우리 상황과 견줘 볼 필요가 있다.

공약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정책으로서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추고, 사회 공감을 강화하는 것이다. 탈원전, 에너지 전환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청와대 발표라 하더라도 기존의 법률 과정이 무시될 수는 없다.

'성화요원(星火燎原)'. 작은 불씨가 넓은 들을 태울 수 있다. 혹시 5년 뒤, 10년 뒤나 다음 세대를 그르칠 불씨가 있는 건 아닌지 여러 각도에서 철저히 따져 가며 결정해야 두고두고 국민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조성경 명지대 교수 supercharmsa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