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배움에 나이는 없다 '아이 캔 스피크'

영화 '아이 캔 스피크' 포스터.
영화 '아이 캔 스피크' 포스터.

“그 일을 잊어버리면 내가 지는 것잉께.”

'아이 캔 스피크'는 8000건에 달하는 민원왕 도깨비 할머니 나옥분 여사와 9급 공무원 박민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웃음과 감동으로 그려낸 영화다.

나 여사가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는 단 한가지, 미국 연방하원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자신과 친구가 겪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서다. 아이 캔 스피크는 실제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이용수(90) 할머니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 큰 감동을 선사했다.

구청 직원 박민재는 나 여사가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자, 수차례에 걸쳐 제안을 거절한다. 본인 업무에 지장을 줄 것을 우려해서이기도 하지만, 나 여사가 70이 넘는 고령이라는 이유가 크다. 하지만, 박민재는 결국 나 여사를 도왔고, 나 여사는 매끄러운 영어 실력으로 일본군 만행을 세상에 알리는 데 성공한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있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독일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병원 신경과학자들은 60대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뇌는 고령에 이를 때까지 가소성을 계속 유지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학습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 결과다.

배우는 과정에서 읽고, 쓰는 행위만으로도 치매가 예방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문맹이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2015년 기준, 국내 치매 환자 16%가 문맹에서 기인하는 데 65세 미만 연령층에서 문맹을 퇴치한다면 2050년까지 치매 환자는 1.62%로 줄고 치매관리비 60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인도에서는 하이데라바드 의과대학 연구팀이 히데라바드 지역에 거주하는 치매환자 6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 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치매 발병 나이는 평균 61.1세로, 두 개 이상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 치매 발병 시기보다 4년 반 빨랐다. 이 지역에서 힌두어와 영어 등 2개 이상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한 연구결과였다.

'배움'을 위해선 체력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인디애나대 노화연구소 연구진은 비만의 지표가 되는 체질량지수(BMI)에 따라 노인 기억 훈련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억 훈련을 실시한 결과, 비만 노인은 정상 체중 노인보다 효과가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나 여사가 단기간에 영어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건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당사자와 후손이 묵인하고, 덮으려고만 하는 행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여사가 영화에서 보여줬듯,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만행을 저지르고도 정식으로 사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버티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죄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옥분 여사가 일본군 위안부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미국 연방하원의회 단상에 오르고 있는 모습.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옥분 여사가 일본군 위안부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미국 연방하원의회 단상에 오르고 있는 모습.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