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전기차 보급정책...車업계, "정부 신뢰 못하겠다"

'역주행' 전기차 보급정책...車업계, "정부 신뢰 못하겠다"

기획재정부가 내년 전기차 보급 목표치를 3만대에서 2만대로 축소하면서 업계 불만이 커지고 있다.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 등 4개 부처가 합동으로 제시한 국가로드맵은 이미 깨졌고,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2022년까지 35만대 전기차 보급'계획도 시작부터 무너질 조짐이다. 급기야 새해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정부가 내년도 보급 계획을 30% 이상 줄이는 걸로 긴급 수정했다. 국가 산업·친환경전략도, 사회적 약속도 신뢰를 잃었다는 지적이다.

정부 계획만 믿고 중장기 전략을 수립한 완성차 업계는 물론 내년도 보급 계획을 공표한 환경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 전기차 구매를 기다렸던 소비자까지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15일 전기차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전기차 보급 2만대 분량 약 26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이 국회예산심의에 들어갔다. 이는 2015년 산업부·환경부·기재부·국토부가 밝힌 전기차 보급 국가로드맵 4만대(2018년) 절반 수준이며, 전기차 보급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업계에 제시한 내년 물량(3만대)의 1만대나 축소된 규모다.

이에 완성차 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국가로드맵과 올해 환경부가 제시한 계획에 크게 못 미친 데다 내년 계획도 11월이 지나 정해졌기 때문이다. 본지 보도이후 자동차 업계에서는 충분한 설명도 없이 규모를 줄였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 계획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계가 확보한 내년도 물량은 3~4만대 수준으로 이들 물량 절반이 재고로 쌓일 처지에 놓였다. 개별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최대 2000만원인 상황에 2만대 이내 순번을 들지 못한 소비자가 보조금 혜택 없이 전기차를 구매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2020년까지 35만대 전기차 보급 계획이 문 대통령 공약이고, 올해 민간 보급 사업도 조기 마감할 정도로 (전기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는데 정부가 보급량을 늘리지 못할망정 반대로 줄이는 건 세계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새해를 두 달도 남기지 않고 계획을 축소한다면 업계가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민간 전기차 보급은 매번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계획 물량(1.5만대)이 이미 9월말 100%(신청계약기준) 소진됐다. 여기에 지금까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국내 전기차 모델은 5~6개뿐이었지만, 내년에 출시되는 신차 전기차만 10종에 달한다. 그 만큼 시장 기대가 높다.

국내 전기차 시장 50% 이상을 점유한 현대·기아차 피해는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1.8만대)와 기아차(1만대)가 각각 계획한 내년도 물량만 3만대 수준으로 부품 수급과 생산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탄소배출 저감, 미세먼지 정책과 일관된 전기차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정책방향과 예산은 반대로 움직인다”라며 “중국은 국가경쟁력차원에서 전기차 보급을 통한 산업을 키우는데 반해, 우린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조성뿐 아니라 산업적 가치도 따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 정책은 업계에는 일종의 산업 가이드 역할을 한다. 전기차 보급확대는 정권과 무관하게 미래 친환경 성장 동력으로 꼽혀왔는데 2018년에는 '브레이크'가 불가피해졌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오는 2020년까지 전기차 보급 각각 '100만대', '20만대'를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 2022년까지 35만대 보급을 공표한 바 있다.


【표】정부가 발표한 전기차 보급 계획 및 로드맵

【표】연도별 국내 전기차 보급 현황(자료 :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연도별 신차 등록 기준

'역주행' 전기차 보급정책...車업계, "정부 신뢰 못하겠다"

'역주행' 전기차 보급정책...車업계, "정부 신뢰 못하겠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