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PBS' 시동…출연연 안정 인건비 70%로 맞춘다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정부출연금 인건비 비중을 현재 50%대에서 70%대로 끌어올린다. 연구 과제 수주에 따라 인건비가 들쭉날쭉한 연구과제중심운영제(PBS)의 부작용을 완화한다는 취지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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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연 인건비가 안정되면 과제 수주를 위한 연구보다 기관 고유의 임무에 맞는 장기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이른바 '눈먼 돈' 논란을 막기 위한 평가 체계 강화가 요구된다.

15일 관가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부터 단계별로 출연연 인건비 가운데 정부출연금 인건비 비중을 70%까지 상향한다. 과기정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 심의 받고 있다.

출연연 인건비는 민간·정부에서 수주한 연구과제비에 포함된 '수탁 과제 인건비', 정부가 일정 금액을 쥐어 주는 '정부출연 인건비'로 나뉜다. 정부출연 인건비는 수주 실적과 상관없는 돈이어서 '안정된 인건비'로 분류된다. 반면에 수탁 과제 인건비는 수주 실적에 따른 변동 가능성이 있다.

정부 방침은 안정된 인건비 비중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현재 비중이 70%에 못 미치는 12개 출연연 가운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표준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6개 기관이 우선 적용 대상이다. 이들 기관은 안정된 인건비 비중이 50~60%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대상이 아니다. 이들 기관은 분야 특성상 해당 기관만 수행 가능한 '지정 과제'를 수주하는 경우가 많다. 과제비 규모도 크다. 이미 출연금 비중이 70%를 넘는 10개 기관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6개 기관의 출연 인건비만 늘려도 전체 출연연 연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25개 출연연의 안정된 인건비 비중은 53.6%였다. 2015년부터 5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정부 안대로라면 비중이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까지 상승할 수 있다.

과기정통부의 움직임은 '포스트 PBS' 포석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PBS 중심으로 출연연을 관리했다. PBS는 과제를 수주한 만큼 예산과 인건비를 가져가는 게 골자다. 경쟁 촉진, 연구 효율 향상에 유리하다. 고도 성장기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많다.

그러나 최근 PBS 부작용이 지적됐다. 과제 수주에 따른 인건비 변동 폭이 커 연구 환경 안정 조성이 어렵다. 무조건 많은 과제를 수주하는 게 기관 운영에 유리하다 보니 연구원의 임무가 변질됐다. 성공하는 연구, 과제 따기 쉬운 연구에 매몰되는 병폐도 나타났다.

연구계는 PBS 완화 또는 철폐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출연금 비중을 상향하는 것과 같은 요구다. 출연금 비중이 높아지면 연구원의 과제 수주 부담은 완화된다. 외부 과제 수주 대신 기관별 고유 사업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

출연연 관계자는 “과제 수주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데 외부 과제 의존도가 높으면 본연의 연구에는 오히려 집중도가 떨어진다”면서 “수주 부담이 줄면 기관 고유 사업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출연금 비중을 높인 것은 이 같은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출연금 가운데 인건비 비중을 높이는 게 아니라 출연금 자체를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 대신 출연금 심사, 과제 평가, 기관 평가 등 장치를 통해 '눈먼 돈' 논란을 방지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PBS의 가장 큰 문제는 인건비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라면서 “내년도 인건비에서 출연금 비중을 70%까지 맞춘 예산안을 제출했고, 현재 이 목표에 미달하는 기관은 내년부터 안정된 인건비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