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 <44>부자가 당연해?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 <44>부자가 당연해?

A의원을 두고 사람들은 짠돌이라 했다. 재벌2세 A의원을 두고 짠내 나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돈 씀씀이가 생각보다 재벌답지 않아서다. 그를 지켜본 지인이나 비서, 보좌관은 재벌의원 '덕'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잘은 모르지만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밥값도 그가 훨씬 많이 냈을 텐데 칭찬을 못 받는다. 부자가 알뜰한 건 쩨쩨한 행동이라 말했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 <44>부자가 당연해?

자수성가한 여성 기업인 L씨는 9남매 중 막내다.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가지 못했다. 그가 상업고등학교에서나 배웠을 법한 주산, 부기 등을 독학으로 섭렵한 건 남편 사업을 돕기 위해서였다. 회사 경리는 일을 가르쳐 놓으면 다른 데로 이직하거나 무단결근했고 도망갔다. 사원이라곤 달랑 하나였다. 다시 뽑아 놓으면 이런 행동을 약속이나 한듯 시스템처럼 반복했다. 주부로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던 L선배는 화가 나서 경리, 회계업무를 배웠다.

성공하기까지 L선배 부부 사업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공장에 아기를 업고 사무실에 나온 날이 한 달 중 스무 날이 넘은 때도 많았다. 가난한 친정은 죽을 만큼 힘들어도 기댈 언덕이 아니었다. 공장은 아이들 놀이터였다. 선배 부부 큰 딸은 선천성 폐질환을 앓았다. 아픈 손가락이었다. 선배 부부는 세 평 반 사무실에서 시작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제일 먼저 손을 벌린 사람은 가족이었다. 여덟 남매가 선배에게 손을 벌렸고 남편 가족인 형님과 두 명의 시누이들은 마치 채권자처럼 돈을 요구했다. 큰형님은 모시던 시아버지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선배 부부 집으로 보냈다. 시누이들은 자기 자녀 대학 등록금 고지서를 선배 집으로 보냈다. 조카 등록금까지 냈지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가족모임을 하면 장소도 메뉴도 그들이 정했다. 아무거나 잘 먹던 그들의 입맛이 어느 새 까탈스럽게 변했다. 선배부부가 음식점을 정하면 장소타박 음식타박을 했다. '고맙다' '수고했다' '맛있다'는 말 대신 '너무 멀다' '외진 곳에 있다' '협소하다' '음식 맛이 없다' 그리고 '부자가 돈 쓸 줄 모른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밥을 먹자고, 여행 가자고, 시아버지 초호화 요양병원 입원을 주장한 이들은 선배 부부가 성공하는데 일조도 하지 않았던 가족이란 이름의 주변인이었다.

집 안에 부자가 있거나 부자 친구를 두면 자랑거리다. 별 상관도 없는데 부자라는 이유로 자신이 인정받는 느낌이다. 여고시절 스승은 부자 그림자라도 밟고 있으라는 말을 하셨다. 부자 친척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고 부자 친구에게 급전을 빌리는 아쉬운 행동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뜻이었다. 부자 친인척, 친구를 둔 사람 중 이런 기대심리 없다 하면 거짓일 게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 <44>부자가 당연해?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속담이 있다. 부자는 돈을 써야 욕을 먹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살아 생전 눈에 띠는 자선활동이나 기부 전력이 별로 없어서 욕을 먹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는 '짠돌이 억만장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부자 아닌 사람은 부자의 사회 헌신 가운데 기부를 가장 정승다운 행동으로 평가한다.

돈을 잘 쓰는 부자를 존경하면 될 일이지 돈 안 쓰는 부자라고 비난할 순 없다. 알뜰해서 부자가 되고 부자가 돼서도 알뜰한 사람에겐 돈에 대한 철학이 있다. 문제는 헛된 기대심리로 부자에 기생하는 가난뱅이 기질이다.

'Give & Take'는 관계 메커니즘이다. 부자 친구에게, 부자 부모, 부자 형제자매에게 그대는 무엇을 주었는가. 미안하고 고맙다는 한마디, 물질의 빚은 마음으로 갚을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