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로·고속로 R&D, 탈원전 기류에 예산부터 '산 넘어 산'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파이로프로세싱, 재처리한 핵연료를 활용하고 독성 물질은 소각하는 소듐고속냉각로(SFR) 연구개발(R&D)이 사면초가 위기에 놓였다. 정부가 당초 계획의 절반으로 예산을 삭감한 데 이어 국회도 사업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SFR 실현 가능성과 경제성 논란이 탈원전 기조를 타고 힘을 받은 탓이다. 현재 정부 예산안마저 '수시 배정' 형태여서 국회 통과 이후에도 사업 추진은 불투명하다. 최소한 원천 기술 개발마저 가로막힐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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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관가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파이로·SFR 사업 타당성을 검증하는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 중이다. 자문단은 원자력계 종사자나 전공자가 아닌 타 분야 과학계 전문가·연구자 중심으로 꾸려졌다. 자문단의 역할은 최근 논란이 된 파이로·SFR 기술 경제성과 사업성의 객관 검토를 하는 것이다.

파이로·SFR 기술은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감안한 4세대 원자로 기술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 기술로, 독성 물질과 재사용이 가능한 연료를 분리한다. 이렇게 재처리한 연료를 활용,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로가 SFR다. '핵쓰레기'로 불리는 사용후핵연료를 효율 높게 처분하고 발전에도 활용하려는 아이디어다. 연구는 세계에서 많이 시도됐지만 상용화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최근 탈원전 기류와 맞물려 이 사업의 실현 가능성과 경제성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원자력연구원 중심으로 사업단을 구성, SFR R&D를 추진해 왔다.

정치권과 과학계 일각은 이 사업을 '원자력 4대강'으로 규정하고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 100분의 1, 우라늄 이용률 60배 같은 기존 설명은 과장되고 기술 실증에만 천문학 규모의 비용이 든다는 게 요지다.

파이로도 논란거리다. SFR는 파이로 기술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데 파이로는 '핵 확산' 논란을 야기한다. 재처리 과정에서 핵연료를 무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기술 확보 시 정치·외교 갈등이 불거질 소지가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의식, 미국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이들 R&D 사업에 배정된 금액은 총 531억원(국제 공동 연구 분담금 30억원 제외)이다. 파이로의 타당성 검증 및 실증 기술 개발에 208억원, SFR 관련 사업에 323억원이 각각 배정됐다.

현재 이 예산안은 국회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했지만 당시에도 삭감 주장이 많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다수가 사업 재검토, 예산 삭감을 주장하고 있어 예결위에서 또 한 차례 홍역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예산마저 '수시 배정' 꼬리표를 달았다. 국회에서 예산이 확정되더라도 실제 집행은 미루는 제도다. 사업 계획이 미비하거나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예산을 지급하지 않는다. 예산을 집행하기 전에 국회 동의를 얻도록 했다. 과기정통부가 자문단을 구성한 것도 이 판단 준거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예산 삭감 시도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 자체도 당초 계획보다 대폭 삭감된 안이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주요 R&D 사업 예산 배분·조정 때 당초 600억원대이던 SFR 사업 예산을 323억원으로 줄였다. 현재 정부 예산안을 따르더라도 SFR 실증 설계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요소 기술 검증·연구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한 원자력 전문가는 “파이로·SFR 연구는 완급 조절이 필요하지만 완전 중단하는 것은 스스로 국가 기술 경쟁력을 깎아 먹는 일”이라면서 “고속로 실현 가능성을 성급하게 판단하기보다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 최소한 기술 확보는 이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