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한국 메모리 기술자 중국가봤자 팽 당하고 돈도 못 벌어”

[이슈분석] “한국 메모리 기술자 중국가봤자 팽 당하고 돈도 못 벌어”

최진석 진세미 사장은 반도체 업계의 화제 인물이다. '메모리 반도체 공정 달인'으로 불리던 그의 이름 석 자가 종종 회자된다. 언론에선 그가 중국에 메모리 기술을 전수하고 인력 브로커 역할까지 한다는 보도를 연이어 내놓았다. 전자신문은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최 사장을 대만 타이페이 시내에서 직접 만났다. 그는 “나를 지칭한 국내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이미 알려진 것처럼 한국 메모리 기술자를 중국이 모셔간다는 얘기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대만에는 언제 왔나.

▲한화를 그만두고 바로 넘어왔다. 여기서 지낸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진세미라는 법인은 싱가포르에 본점 소재지가 있다. 컨설팅 업무를 주로 한다.

-어떤 컨설팅인가.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 증대 컨설팅을 하고 있다. 별도의 투자 없이 프로세스 개선만으로 생산량을 높이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하이닉스 근무 당시 하던 혁신 작업 경험을 여기에 전수하는 것이다.

-누가 고객사인가.

▲이노테라, 렉스칩 등 마이크론그룹에 속한 D램 업체가 대상이다. 이젠 다 흡수됐으니 그냥 마이크론이라고 부르는 게 편하겠다.

-한국 메모리 기술을 유출한다는 얘기가 있다.

▲제품 개발, 수율 등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생산성 향상, 이 분야에만 매달리고 있다. 문서 하나, 민감한 영업 정보 하나라도 여기에 들고 왔으면 한국 회사·정부가 가만히 있었겠는가. 돈을 들이지 않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산'하는 산업에 모두 적용되는 프로세스 혁신이다. 세계 굴지의 컨설팅 회사와의 경쟁 입찰에서 이겨 이 일을 따냈다. 기술 유출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성과는 있었나.

▲별도의 투자 없이 생산량 20% 증대가 목표였다. 2015년 9월부터 이노테라, 2016년 9월 렉스칩이 대상이었다. 첫 해 이노테라는 목표치를 소폭 밑돌았다. 할 말이 많지만 이곳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렉스칩은 성공했다. 최근 3차 연도 계약도 따냈다. 생산량 증대 목표는 달성했고, 마이크론은 대만 공장에서 이뤄진 프로세스 혁신을 미국과 일본 히로시마 공장(엘피다 공장)에도 확장 적용했다. 3차 연도 계약에선 원가 절감이 주된 컨설팅 내용이다. 국내 중소 규모 장비 파츠 업체와 할 일이 많다. 대만, 일본 메모리 공장에는 한국산 장비가 거의 없다. 기껏해야 피에스케이 장비 몇 대 정도다. 장비에 붙는 소모성 부품 파츠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컨설팅을 통해 국내 중소 업체가 마이크론과 거래를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마이크론 기술 수준이 상당히 올랐겠다.

▲그래도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국내 메모리 기술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와서 들여다보니 특히 더 그렇다고 느껴진다.

-진세미에는 한국 인력이 몇 명이나 있는가.

▲꽤 있다. 내가 쓰는 중국어 통역사만 12명이다.

-중국으로 인력을 빼간다는 얘기도 있다.

▲아마 나와 함께 일하는 인력이 대만으로 넘어오다 보니 와전된 것 같다. 우리는 중국 일을 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한국 기술자가 어설프게 중국에 가 봤자 팽 당할 수 있으니 가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한국 메모리 기술자가 중국에 가면 최대 9배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나도 그 보도를 봤다. 잘 모르는 기자들이 브로커 몇 명의 말만 듣고 쓴 것 같다. 주변에 그렇게 받고 누구 간 사람이 있는가?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연봉? 기껏해야 대만 현지인 연봉의 두 배다. 대만 연봉 수준은 매우 낮다. 대졸 초임 월급이 120만~130만원 수준이다. 거기서 두 배 줘 봤자다.

-그럼 중국 메모리 기술은 누가 이끌어 가는가.

▲대만 사람들이다. 대만 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그런 정보가 많이 들어온다. 이노테라, 렉스칩, 난야에서 일하던 기술자 대부분이 중국으로 넘어가 있다. 허페이시에 짓고 있는 중국 D램 공장에 이노테라 기술자 250명이 우르르 넘어가는 바람에 한 바탕 난리가 난 적이 있다.

-한국 인력 수요도 있지 않겠는가.

▲대만에 와 보니 젊은이는 그렇지 않은데 지도층에 오른,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좋지 않은 한국 감정을 아직도 품고 있다. 1990년대 한국 일방의 단교 관련 얘기를 아직도 하면서 '믿지 못할 사람들'이라고 한다. 대만 사람들이 키를 잡고 가는 가운데 그 아래로 한국인이 기술자로 가 봤자 오래 가기 어려울 것이다. 허페이에 한국 엔지니어가 20여명 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역할은 아주 한정돼 있다. 1~2년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고 난 뒤 버려질 확률이 높다.

-중국이 대만 인력을 선호하는가.

▲그렇다. 일단 말이 통하지 않은가. 인건비도 대만 사람이 훨씬 저렴하다.

-중국은 앞으로 어떻게 인력을 수급할 것으로 보는가.

▲초기에는 대만 기술자를 활용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삼성전자, 인텔,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중국인 기술자들을 불러들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베이징대, 칭화대 등 자국 우수 대학으로부터 인력을 수급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그러지 않았는가.

-지금의 메모리 호황은 언제까지 갈 것으로 전망하는가.

▲지금과 같은 호황이라면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국 현지 업체가 메모리 시장에 들어와도 돈을 벌거나 손익분기점 정도는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삼성전자의 결정에 달렸다. 남들 돈 버는 게 아니꼬우면 공급을 늘리고, 그렇지 않고 안정된 이익을 계속 올리려 한다면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그런 상황이 계속 될 것이다. 문제는 장기다. 중국에 시간을 주면 결국 우리가 따라잡힐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싱가포르 증시에 진세미를 상장시키는 것이 중단기 목표다.

<최진석 대표는 누구?>

최진석 대표는 '메모리 반도체 공정 달인'으로 불린다. 국내외 반도체 장비, 재료, 소자 업계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이가 드물다. 최 사장은 1984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입사했다. 삼성에 재직하던 시절 기술 대상을 세 차례 탔다. 2001년에 하이닉스로 자리를 옮겨 연구개발(R&D), 제조, 개발 생산, 신기술 제조 등 다양한 기술 조직을 이끌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하이닉스를 회생시킨 주역의 한 명이라고 평가한다. 하이닉스는 2002년 유동성 위기로 미국 마이크론에 매각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는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찾아가 최소투자로 최대 수율과 최대 생산량을 맞출 수 있다고 설득하며 매각 안건 부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2003년 제조본부장을 맡아 이 같은 목표를 달성했다. 2005년까지 세계 최저 메모리 제조 원가, 세계 최고 생산량 확대 성과 등 다양한 기록을 내놓았다. 이 모든 기록은 별도의 투자 없이 기존 장비와 공정 프로세스를 뜯어고쳐서 일궈 낸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07년 수율과 제조 원가 측면에서 하이닉스에 일시 뒤처져 있다는 보고를 받고 반도체 경영진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하이닉스가 '헝그리 정신'으로 삼성을 눌렀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최근 만난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당시 삼성 반도체 연구 부서에선 하이닉스가 어떤 방법으로 생산량을 끌어올렸는지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었다”고 회상했다.

최진석 사장은 2010년 하이닉스 신임 대표이사직을 놓고 경합을 벌이다 권오철 전 대표가 임명되자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STX솔라 대표, 한화큐셀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직을 역임하다가 2015년 9월 사임했다.

타이페이(대만)=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