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45>연애커뮤니케이션-(4)라면 먹고 갈래요?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45>연애커뮤니케이션-(4)라면 먹고 갈래요?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남성에게 불편하다. 은유 투성이다. 여자 입장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영상, 섬세함이 가득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호우시절'이 그렇다.

남자 주인공은 여성을 섬세하게 이해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한석규가, 유지태가, 정우성이 그랬다. 생긴 것도 예쁘장하거니와 마음 씀씀이는 어찌 그리 여리고 아름다운지. 여자 마음을 모르는 '남자 짐승'은 동의하지 못한다.

여자의 은유를 모르다 보니 영화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남자 주인공 태도는 애매하고 모호하다. 유지태나 정우성, 한석규는 한결같이 덜 떨어진 인물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우유부단한 인물. 한심하다. 남자 눈높이에서 여자를 바라보면 차라리 홍상수의 암호는 이해가 빠르다. 허진호 영화 '봄날은 간다'로 가보자.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45>연애커뮤니케이션-(4)라면 먹고 갈래요?

이영애(은수)가 말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 유지태(상우) 입장에서는 황당하다. 이 애틋한 상황에서 고작 '라면 먹을지' 물어보는 여자의 은유는 혹독하다. 남성 대부분은 나중에 '라면 먹고 가라'는 의미를 알아채고 웃는다.

차라리 '자고 갈래요?' 하고 물어보던지. 아니면 '나 너 좋다'고 말을 하면 눈치라도 채지. 뭔 말을 이렇게 알아먹지 못하게 하는 건가.

남성 입장에서 이영애 말을 해석하면 '배고프니 라면이나 먹고 가'라는 말이다. 연애 감정은 하나도 없다. '배고프면 하나가 아니라 두개 정도 끓여줄 테니 밥이나 말아서 먹고 가라' 냉소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영화 속 유지태도 이해 못했으니, 스크린 밖 남자들이야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랴.

'8월의 크리스마스'는 더 불편하다. 아들이 묻는다. “영화에서 한석규와 심은하는 사귄 거예요?” 아무리 영화를 들여다봐도 몇 번을 봐도 둘이 사귀었을 거 같은 상황은 없다. 멜로영화에 베드신이나 키스신 하나 없으니. 미스터리 물도 아니고, 영화가 끝났는데 결론이 없다.

여성은 다르다. 둘은 사랑했으며, 그 사랑이 이뤄지지 못해 안타까운 영화라고. 심은하 초상화를 보며 느끼는 게 없냐고 되묻는다.

아들 둘을 키우며 남성과 여성의 DNA가 한참 다르다는 걸 터득했다. 아들에게 묻는다. “너 어제 친구 만났지? ○○ 엄마 몸이 아프다고 했잖아. 지금은 어떠시니?” “몰라요.” “왜 몰라? 어제 ○○이 만났다며?” “만났지요.” “근데 몰라?” “몰라요 안 물어 봤어요.” 엄마가 볼 때 아들은 '무정하고 매몰찬 무관심종자'다. 밥 먹고 자고 노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45>연애커뮤니케이션-(4)라면 먹고 갈래요?

사귀는 여자가 갑자기 침묵시위를 할 때면 남자는 초조하다. 갑자기 이 여자가 왜 이럴까.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여자가 말한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그래?”

나중에 안 사실이다. 만난 지 200일째 되는 날인데 그걸 몰랐단다. 남자는 속으로 외친다. '나 원 참. 내가 그걸 세고 있냐? 게다가 200일이 무슨 기념일이냐고. 그럼 만난 지 201일째는 왜 기념일이 아닌데!'

남성에게 은유적인 대화는 퍼즐처럼 어렵다. 은유는 여자의 대화법이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엿들은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첫째, 여자 이야기가 절반을 넘는다. 누구 여자친구가 '예쁘고', 누구네 누나가 '예쁘고' 어느 맛집 음식을 서빙하는 아가씨가 '예쁘다'는 이야기다. 둘째, 군대에서 축구를 하던, 축구장에서 군대 이야기를 하던 술판에서 그들은 모두 '손흥민'이고, '특수부대 군인 출신'이라는 자랑 뿐이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