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국가전력수급계획은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ET단상]국가전력수급계획은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지난달 24일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권고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와 탈원전 정책은 별개라고 하던 정부는 13.3%에 불과한 시민참여단의 탈원전 유지 답변을 근거로 신규 원전 6기의 건설을 전면 백지화하는 결론을 발표했다. 이에 신규 원전 건설을 고대하던 지역 주민, 원자력 참여 기업은 물론 원자력을 공부하는 학생까지 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에너지 정책은 경제 발전의 중요한 토대이자 국가 안보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신중을 기해 5년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한다. 이는 에너지 분야에서 최상위 법정 계획이다. 이 계획을 근간으로 정부는 2년마다 앞으로 15년 동안 국가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공청회와 전문가 심의 과정 등을 거쳐 여러 유형의 발전소 건설 계획을 포함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최종 확정한다.

많은 시간과 전문가의 노력으로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는 이유는 전력 수급 안정성, 경제성, 환경 측면을 모두 고려해서 최대한 국익에 도움을 주고 국민 편익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력수급계획에서 정권의 변화는 고려되지 않는다. 정권은 바뀌어도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은 유지돼야 한다. 중소기업이 계획에 따라 기술을 개발하고 설비와 인력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이유는 정권이 바뀌어도 에너지 정책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설비·인력을 투자한 중소기업 입장에선 법률 근거 없이 일방으로 결정된 원전 백지화를 이해할 수 없다.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한다면 이미 국가에서 계획한 내용은 그대로 진행하고 수정이 필요하면 전문가의 심도 있는 참여를 통해 계획을 수정한 뒤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는 단지 금액 차이일 뿐 국가전력수급계획에 반영돼 국민 세금으로 이미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사업이다.

환경단체의 반대에도 노무현 정부는 원전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전력수급계획에 의거한 신고리 3·4호기 건설을 추진했다. 여기에 많은 과학자가 참여했고, 수많은 중소기업도 기술 개발 투자와 공장 설비 증설 및 인력 육성에 나섰다.

그 결과 신고리 3호기를 성공리에 준공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동일 모델 4기도 내년부터 순차 준공될 예정이다. 이들 원전은 환경단체의 우려에도 안전성을 지속해서 높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동되는 제3세대 노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월에는 까다로운 유럽의 안전성 심사까지 통과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체코가 우리 원전 'APR 1400'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문제는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우리가 더 이상 짓지 않는데 과연 누가 사 줄까 하는 것이다. 경쟁국인 러시아, 중국 등은 이 약점을 계속 자극할 것이다.

원전 수출 기자재의 공급망 붕괴도 걱정이다.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되고 영국 원전이 수주될 때까지는 5~6년이라는 시간차가 발생한다. 국내 원전 건설이 없으면 중소기업은 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 원전 건설에는 2000여개 업체가 참여하며, 95% 이상이 중소기업이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정부의 신규 원전 백지화로 인한 피해 규모가 약 1조원에 이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원전 산업의 '사망선고'로 중소기업 도산과 관련 근로자 실직 등 앞으로 직간접 피해까지 고려하면 그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관련 학과에 진학해서 원자력 산업 역군의 꿈을 키우고 있는 젊은이에게는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액화천연가스(LNG), 신재생 확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부작용이 예상된다. 다음에 정권이 바뀌면 다시 정부 계획이 대폭 수정될 것인데 누가 투자할 수 있겠는가. 이는 국가 행정 계획의 신뢰성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정책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이유다.

신준식 다우산업개발 대표 sjs@dowind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