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인재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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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일본 전자업계에 '달빛관광' 경계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세미나 등을 핑계로 일본 기술자를 초청한 뒤 몰래 기술을 전수 받는 일이 빈번해지자 기술 유출을 우려한 일본 기업이 공항에서 직원들의 출국을 단속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야 달빛관광이든 일광관광이든 중요치 않았겠지만 일본은 자국 기술자의 한국 출장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던 한국이 이젠 과거의 일본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첨단 기술 분야 인력을 영입하거나 기술을 빼내려는 시도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반도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배터리 산업에서까지 스카우트 열풍이 불고 있다. 한 예로 배터리 관련 소재 업체 한 임원은 하루에 한 번 꼴로 영입 제의를 받는다고 한다. 특히 중국이 스카우트에 총력전을 펼치면서 강도는 높아지는 분위기다.

[프리즘]인재 유출

좋은 근로 조건 또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이직하는 건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직업 선택의 자유, 행복 추구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을 손 놓고 쳐다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인력 빼내가기'라고 비난하거나 이를 차단하는데 급급하기 전에 한 가지 짚어 봐야 할 대목이 있다. 그들이 떠나기로 결정한 이유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일이다. 포스텍 생물학정보연구센터(BRIC·브릭)가 지난해 이공계 박사와 6개월 이내 박사 졸업예정자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국내 두뇌의 해외 유출 심화 원인을 묻는 질문에 59%(복수 응답)가 '연구의 독립성이 보장되기 어려워서'라고 답했다. 뒤를 이어 국내 일자리 부족(41%), 선진국보다 열악한 처우(33%) 등이 꼽혔다. 흔히 고액 연봉에 인재가 해외로 유출된다고 생각하지만 배경엔 여러 이유와 사정이 있을 것이고, 여기에 근본 원인에 가까운 해답이 있을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인력 유출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인재를 보호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할 시점이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