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누더기 R&D 방치하는 국회…'예타 개선' 논의 도돌이표

주무 부처를 바꿔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비타당성조사 절차를 개선하려는 문재인 정부 구상이 국회에 발목 잡혔다. 정부 내 갈등이 풀렸지만 국회가 법안 처리를 미룬다. 기존 반대 논리가 반복되면서 논의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평가 장기화, 기초·원천 연구 약화 등 기존 예타 문제가 새해에도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3일 정치권과 관가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5일 경제재정소위에서 국가재정법 개정안 및 대안 처리를 논의할 예정이다. 국가재정법 개정은 현재 기획재정부가 맡고 있는 국가 R&D 예타 업무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관하는 게 골자다. 예타는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 3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사업의 타당성을 사전 심의하는 제도다.

국가 R&D 예타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같은 다른 국가 사업의 예타와 달라야 한다는 게 개정 취지다. 국가 R&D가 글로벌 기술 경쟁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예타 기간이 짧아야 하고 비용·효과 분석 등 경제성 평가에만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해당 법안은 지난 6월 발의 직후부터 기재부 반대에 부딪혔다. 다른 사업 예타와의 형평성, 재정 건전성 하락 우려 등을 이유로 들었다. 최근 과기정통부와 기재부가 예타 업무를 '완전 이관'하는 것이 아닌 '위탁'하는 쪽으로 합의했다. 제기된 우려에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일부 의원 반대로 논의가 도돌이표를 그렸다. 기재부 관료 출신인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기존과 같은 이유로 법안 처리를 반대했다. 개정안이 R&D와 다른 분야 예산 간 형평성을 훼손한다고 지적한다. 기존 예타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기재부가 개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행 예타의 구조적 한계를 간과한 처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R&D 사업이 예타에 오르려면 과기정통부의 기술성평가를 거쳐야 한다. 이 평가를 통과한 사업이 기재부 소관의 예타에 오른다. 일종의 중복 평가를 받는 셈이다. 이 문제는 현 체계를 그대로 두고는 해결하기 어렵다.

과기정통부는 예타 업무 수탁 시 둘을 통합할 계획이다. 사업 기획과 타당성 검토를 병행할 수 있다. 평균 20개월 걸리던 예타 기간을 6개월로 줄인다는 목표다.

과학계 관계자는 “예타가 장기화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평가가 이원화된 점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과기정통부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여러 측면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이 문제만 해결해도 기간 단축에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타 장기화는 국가 R&D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2014~2015년 예타에 오른 28개 R&D 사업 중 67.9%인 19개 사업이 예타에 18개월 이상을 소비했다. 1년 안에 예타가 끝난 사업은 하나도 없었다. 사업 기획 후 국가 '승인'을 받기까지 최소 1년 이상, 길게는 3년 이상이 걸렸다.

자율주행자동차 R&D가 단적인 예다. 미국은 지난해 계획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10년 간 40억 달러 투자를 시작했다. 일본도 2014년 발표 후 1년 만에 투자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계획 발표 후 아직 예타 중이다. 2019년 이후에나 사업이 시작될 전망이다.

기초·원천 연구 약화도 문제다. 2014~2015년 예타를 신청한 R&D 사업 중 산업기술 개발 사업 통과율이 80%인데 반해 기초·원천기술 개발 사업 통과율은 25%에 불과했다. 예타를 통과한 사업도 세부 과제에서 원천형 과제나 순수 R&D 과제가 70% 가량 줄었다. 재정 지출 절감, 비용·효과 분석 위주로 운용되는 기재부 예타의 한계로 지적된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