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과학기술 반세기 경험, 글로벌 포용 성장 초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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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아찔한 급커브 구간을 지나자 시속 130㎞ 활주 속도에 온 몸의 진동과 전율이 느껴진다.' 최근 인천국제공항에 개관한 평창 동계올림픽 'ICT 라운지'의 봅슬레이 가상현실(VR) 체험 광경이다. 우리나라에서 30년 만에 개최되는 올림픽은 세계인에게 첨단 과학기술 올림픽으로 각인되고 있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세계 속 한국을 대표할 정도로 성장했다. 스포츠·문화 외교의 꽃인 올림픽의 핵심 테마가 될 정도의 외교 중심으로 떠올랐다. 역사속에서도 과학기술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었다.

17세기 제정 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사절단 일원으로 잠입했다. 유럽 열강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의 발로였을 것이다. 아편 전쟁 이후 청나라는 국립 외교기관인 총리아문까지 설치하며 서구 과학기술을 배우기 위한 양무운동(洋務運動)에 열을 올렸다. 이처럼 역사의 진보는 더 나은 과학기술 역량을 도입하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의 연속이었다.

베트남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평균 30세라는 젊은 인구로 역동하는 국가다. 이곳은 지금 한국의 과학기술 배우기가 한창이다. 지난달 현지에서는 한·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의 첫발을 내디디는 의미 있는 자리가 있었다.

V-KIST 설립은 베트남에 연구 방식에서 기관 운영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한국의 혁신 경험과 노하우를 이전하는 사업이다. 부득담 부총리의 말처럼 베트남은 V-KIST 설립을 통해 한국의 혁신 DNA를 온전히 전수 받기를 희망하고 있다.

과학기술 외교의 항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베트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다낭 선언'에서 제시됐다.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그 자체를 이식하는 과정으로 진화하고 있다.

산업혁명을 먼저 시작한 서구의 과학기술 발전은 인류의 소중한 경험이다. 현대 사회의 국가 발전 체계 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경험을 베트남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이 그대로 흡수·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개도국 성장 방정식의 해답 제시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개도국으로 시작해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성장을 이룬 한국의 경험이 '족집게 강의'처럼 효과가 있을 것이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세계 후발국에 한국의 경제 성장 DNA는 훌륭한 참고서다. 우리 경험을 담은 혁신 생태계를 이식하는 것이 앞으로 대한민국 과학기술 외교가 나아갈 길이다.

이러한 혁신 생태계의 이전은 단편의 협력을 넘어 개도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혁신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다변화 등 변화하는 국제 경제 질서 안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우리 기업에도 이득이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글로벌 포용 성장'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다.

백제는 남북조 시대 중국 기술자들에게 와(기와) 박사, 노반(탑) 박사 등의 관직까지 수여했다. 앞선 기술과 문물 유치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결과 찬란한 고대 문명을 이룩했다. 백제 문명은 일본을 비롯한 인근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불교 건축 기술 등을 전파하며 과학기술 문명 태동에 기여했다.

이제는 우리의 성공 DNA가 녹아 있는 혁신 생태계를 재창출하고 더 크게 나눌 때다. 후발국에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고, 세계의 지속 가능한 포용 성장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소프트파워 리더십을 기대한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bglee@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