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죽음을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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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죽음을 선택하다

보라매병원 사건(1997년)과 김 할머니 사례(2008년)는 유사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판결이 나면서 파장을 일으킨 대표 사례다. 두 사안 모두 환자 가족 요청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그럼에도 보라매병원 의료진은 살인 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김 할머니 사례는 대법원이 연명치료 중지를 승인했다. 의사는 혼란스러워했고, 죽음을 앞둔 환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부담은 환자, 가족, 의료진 모두가 짊어졌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지속 여부 논의가 지속됐다. 내년 2월 환자 스스로 혹은 가족 동의가 있을 경우 의료진 판단에 의거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다. 환자 자기결정권 보장과 삶을 정리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존엄한 죽음' 가치를 실현한다.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안하다. 법이 허용한 테두리에서 벗어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불확실성이 큰 의료 현장을 제도가 재단하면서 발생할 부작용 우려도 있다. 인위적 죽음을 선택하는 사회, 존엄한 죽음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정의

인위적 죽음에 대한 개념은 다양하다. 가장 오래된 개념이 '안락사'다. 오랫동안 질병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을 인위적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다. 20세기 말 중환자 시설이 좋아지면서 '소극적 안락사' 개념이 나왔다. 사망을 앞둔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행위다.

소극적 안락사가 치료 행위 중단을 포함해 충분한 영양분을 주지 않는 등 인권을 침해할 여지까지 포함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개념이 나왔다. 존엄사 혹은 이것을 합법화한 의사조력자살 등이다. 의사조력자살은 환자 자기결정권을 보장해 의사 도움 아래 생을 마치는 것이다. 질병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은 환자가 의사가 처방한 약이나 의료 기구를 활용해 생을 마감한다. 네덜란드, 스위스, 캐나다, 벨기에 등에서 합법화됐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웰다잉' 개념이 등장했다. 삶과 죽음의 질을 보장한다는 취지지만 명확한 정의는 없다. 자연사는 인위적이고,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으로 일체 인위적 의료행위를 안하는 개념까지 포괄한다.

◇보라매병원·김 할머니 사건이 낳은 '연명의료결정법'

환자 가족의 간절한 요구로 치료를 중단, 환자가 사망한 두 사건 결과는 정반대다. 의료계는 혼란스러웠다. 환자와 가족 요구, 책임지지 않겠다는 각서 등도 법적 효력이 없다. 처벌이 두려워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망에 이르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연명치료를 지속했다. 중환자실은 정작 급한 환자보다 연명치료를 받는 환자가 넘치게 됐다.

정부는 의료계 혼란을 줄이고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기 위해 올해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하고, 시범사업 중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스스로 혹은 가족 전원 동의에 따라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게 규정한다.

대상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간경화을 앓는 말기환자, 임종기 환자 중 본인이 희망하는 사람이다. 환자가 의사 능력이 있으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후 임종기에 접어들 때 담당의사 확인을 거치면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접수한다. 환자 의사 능력이 없지만 환자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해당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가족 2인 이상 일치하는 진술을 얻을 때다. 환자 의사능력도 없고, 확인도 불가능하다면 환자 가족 전원합의와 의사 2인 확인이 있을 때 대체 가능하다.

◇죽음에 대한 가치 변화, 환자 자기의사결정권 보장

사전에 연명의료중단을 알리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매주 수백 건씩 접수된다. 10월 4주차 203건으로 시작해 11월 4주차에 500건을 돌파했다. 12월 첫째 주에만 753건이 몰려 총 2950건(12월 1일 기준)이 접수됐다. 지난 달 24일 기준 연명의료계획서를 접수한 사람은 11명이며, 연명의료를 중단 혹은 유보한 사례는 총 7건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해도 임종기에 연명의료를 계속 받을 수 있다.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에 대한 종합계획 비전과 추진전략(이윤성 서울대 의과대 교수)'에 따르면 바람직하고 편안한 죽음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 21%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뒤를 이어 '부담되지 않게 죽음(17.8%)' '마지막까지 명확한 의식 유지(9.1%)'를 꼽았다.

임종 예측 때 자신의 상태를 알기 희망하는 정도는 전체 40%가 '가능한 치료법 유무 관계없이 구체적으로'라고 답했다. '임종 전까지 예상기간(26.1%)' '임종 전까지 예상기간과 가능한 돌봄 내용(15.2%)'이 뒤를 이었다. 죽음을 원하는 장소는 전체 3분의 1 이상이 '가정'이라고 꼽았다.

죽음에 대한 정보, 의사결정에 대해 자기결정권 보장 욕구가 커진다. 현실은 반대다. 환자 대다수가 병원에서 사망한다. 임종직전 의식이 없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개인 평생 의료비 중 25%가 사망 1년 전에 사용된다. 의료진이 임종기 환자에 정확한 정보를 주는 사례도 많지 않다.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은 “우리나라 국민 70%가 병원에서 사망하며, 이중 40%는 평소 치료받는 곳이 아닌 익숙하지 못한 의료기관에서 삶을 마감한다”면서 “병원은 환자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게 충분한 정보와 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임종과정에 접어든 환자에 대해 치료효과 없이 임종기간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환자, 가족이 중단할 수 있다. 평생 삶을 준비해 왔던 것처럼 죽음을 준비하는 기회를 가진다.

비효율적인 의료행위 중단 효과도 있다. 호전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지속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환자, 가족,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다. 의식 없이 약과 기계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는 환자, 가족은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과 죽음 이후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정부도 의료비 지출에 따른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 병원도 중환자실에 연명치료 환자가 많으면 정작 집중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돌보지 못한다.

이 원장은 “연명의료결정법의 가장 큰 목적은 의료 집착적 연명의료를 중지, 보류하게 한 점”이라면서 “법 제정과 함께 죽음에 대해 의사를 표시하는 문화가 형성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법 사각지대 해소는 과제

죽음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제도지만 개선점도 존재한다. 법에서는 대상자를 임종과정 환자로 한정한다. 임종과정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 효과가 없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뜻한다. 의료계는 임종기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비판한다. 또 식물인간이나 말기환자는 포함이 불명확하거나 포함시키지 않았다.

연명의료결정에 따른 환자 사망 시 보험 문제도 존재한다. 정부는 보험상 불이익이 없다고 강조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논란 여지가 크다고 본다. 사망원인을 연명의료 중단행위인지, 임종과정 말기상태 사고로 볼지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달라진다.

윤동욱 법무사무소 서희 대표변호사는 “현행 보험약관은 고의로 인한 자살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보험 등 불이익 금지 규정이 있지만 법에서 연명의료중단에 의한 사망이 자살이 아니며 보험금 지급 면책 예외사유로 규정하는 등 법률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환자 의사표현이 불가능하며 평소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울 때 가족 전원 합의에 따라 연명의료를 결정한다. 하지만 상당수 가족이 의사 합의가 어려우며 추후 번복하는 때도 있어 보완이 요구된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