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과학을 위한 나라는 없다

[기자수첩] 과학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나라도 국회도 버렸다. 민의의 전당은 벽이 높았다.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더니 머리를 쳐냈다. 몰상식과 무관심이 넘쳤다. 육성, 진흥 같은 미사여구는 봄날 사탕발림이었다. 국회가 등진 기초과학 이야기다.

국회가 내년도 정부 예산안 가운데 개인 기초연구 지원 사업 예산을 400억원 삭감했다. 어림잡아 360개 기초연구 과제를 지원할 수 있는 규모다. 이 사업의 올해 예산 규모는 1조2000억원.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두 배 증액을 약속한 예산이다. 삭감안도 1조4200억원이니 어찌됐든 순증은 맞다.

논란의 본질을 찾기 위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속기록을 뒤지다가 실망해야만 했다. 당초 약속보다 800억원이 줄어든 '결과'는 논외로 치자. 문제는 '과정'이다. 예결특위는 단일 사업(기초연구 예산은 수백, 수천 개 과제로 나눠 집행된다) 예산이 왜 이렇게 큰지 따지다가 성과를 다그쳤다. 증액을 요구하는 의원에게 “끝난 얘기”로 일갈하고 속전속결했다.

이미 확정된 예산 얘기를 굳이 또 꺼내는 건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기초연구 예산은 청년 과학자의 사다리다. 그 예산이 적게는 1억원, 2억원으로 쪼개져서 수많은 연구실이 운영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곳엔 초임 교수가 있고, 비정규직 연구원도 있다.

의원들 말대로 '성공'은 보장할 수 없지만 그들은 그 예산을 부여잡고 밤을 지새운다. 기초연구 예산은 원래 성격이 불확실한 '희망 비용'이다. 기초과학의 불투명한 미래를 그나마 지탱하게 해 주는 돈이다. 기초과학은 이런 예산이 아니면 유지되기 어렵다. 그곳에 있는 청춘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잘라낸 게 무엇인지 분명히 해 둬야 하는 이유다.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 절차를 개선하는 법안도 국회에서 몇 달째 잠자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분명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정부다. 그런데 왜 과학계에만 유독 불미스러운 사건이 많은지 의구심이 들었다. 국회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에게 과학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