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 그들은 한국에 무엇인가]외산 SW '우상숭배'에 한국 제품 씨 마른다

[글로벌기업, 그들은 한국에 무엇인가]외산 SW '우상숭배'에 한국 제품 씨 마른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우월한 시장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생태계 교란 행위를 일삼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다. 그 기저에는 글로벌 기업 제품이라면 '우상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신봉하는 이용자(기업)들의 인식이 깔려 있다. 소프트웨어(SW) 분야는 그 정도가 심해 한국 업체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업무용 SW인 전사자원관리(ERP) 분야가 대표 사례다. 정보기술(IT) 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글로벌 ERP 시장 점유율 1위는 SAP로 24%를 차지한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는 SAP 점유율이 49.7%(IDC코리아 조사)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의 갑절 이상으로 높다.

이는 중국 상황과 대조를 이룬다. 중국 ERP 시장에서는 자국 업체 용유가 시장 점유율 30.7%로 1위를 달리고 있다. SAP가 14.0%로 2위지만 진뎨(11.8%), 랑차오(10.7%), 딩제(6.5%) 등 현지 기업 점유율의 합이 67%에 이른다.

중국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뉴클레우스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SAP 고객사 10곳 가운데 6곳은 SAP에서 같은 솔루션을 다시 구매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10곳 가운데 9곳은 SAP S/4HANA(클라우드 플랫폼)에 투자할 생각이 없으며, 점차 SAP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한국에선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와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ERP 구매 최우선 순위를 글로벌 기업 제품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ERP 제품이 시장에 분명히 나와 있는 데도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외산 제품을 선호한다. 글로벌 SW에 대한 정보 왜곡도 한몫 차지한다.

ERP가 유독 심하고 다른 SW 분야도 이런 양상은 별반 차이가 없다.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분야에서는 오라클, IBM,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기업 제품의 한국 점유율이 90.7%다. 보안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외산 SW 독점 구조 속에 한국 업체는 싹조차 틔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벌 SW의 맹신은 한국 SW 산업 성장을 저해한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에 따르면 한국 패키지 SW 시장은 2008년 2조8395억원에서 2016년 4조386억원으로 1조1991억원 성장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한국 업체가 차지하는 제품 비중은 45% 안팎에서 큰 변동이 없다. 외산 SW 선호로 인해 한국 SW 성장이 전체 시장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한다.

과도한 글로벌 SW 사용은 기업 라이선스 분쟁과 유지보수료 인상 문제를 불러온다. 지난해 발생한 SAP와 한국전력공사 간 라이선스 분쟁이 대표 사례다. SAP나 오라클 제품의 비싼 유지보수료는 끊이지 않는 이슈다. 기업용 SW는 일단 깔고 나면 다시 거둬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유지보수료를 올려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한 한국 SW 업체 대표는 “외산 SW에 대한 과도한 맹신은 한국 기업 IT 시스템 운영에 큰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한국 SW 산업 성장을 가로막는다”면서 “현재 글로벌 ICT 기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도 결국 외산 제품을 우선시하는 이용자(기업)의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 <표>ERP 시장 상위 점유율 순위 (자료:가트너·IDC코리아 등)>


 <표>ERP 시장 상위 점유율 순위 (자료:가트너·IDC코리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