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대책에 엇갈린 반응…'가능한 규제 총동원 vs 제도권 신호탄'

가상화폐 거래소 객장에 설치된 시세 전광판. 박지호 기자 jihopress@etnews.com
가상화폐 거래소 객장에 설치된 시세 전광판. 박지호 기자 jihopress@etnews.com

정부가 13일 내놓은 가상화폐 관계부처 차관회의 결과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거래를 인정하되, 과열된 시장 분위기와 범죄 악용은 철저히 막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책도 투기과열과 이를 이용한 범죄행위를 막는데 집중됐다.

이번 조치를 두고 전문가 반응은 엇갈린다.

시장을 얼어붙게 할 각종 조치가 총동원됐다는 우려가 있는 반면, 일본처럼 제한적인 제도권 수용으로 읽혀 시장 분위기를 더 뜨겁게 달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현행법 상 가능한 규제 총동원

가상화폐 투기 열기를 조장한 각 분야별 대책이 총망라됐다.

우선 가상화폐 거래소의 고객자산 별도 예치, 설명의무 이행, 이용자 실명 확인, 암호키 분산보관, 가상화폐 매도매수 호가·주문량 공개 등 의무화를 추진한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자금세탁방지의무를 부과하고 은행 등의 의심거래 보고 의무도 강화한다.

가상화폐 자금모집 행위인 ICO와 신용공여, 방문판매·다단계판매·전화권유판매 등 가상화폐 거래소의 금지행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위반 시 처벌한다.

또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검찰과 경찰은 다단계·유사수신 방식 가상화폐 투자금 모집, 기망에 의한 가상화폐 판매행위, 가상화폐를 이용한 마약 등 불법거래, 가상화폐를 이용한 범죄수익 은닉 등 가상화폐 관련 범죄를 엄정 단속한다. 현재 수사 중인 비트코인거래소 해킹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는 한편, 대규모 사건이나 죄질이 중한 경우 구속수사 원칙과 엄정 구형 방침을 세웠다.

경찰청도 가상화폐 투자빙자 사기·유사수신 등 불법행위 집중단속을 확대하고, '해킹·개인정보 침해사범' 등 시의성 있는 특별단속도 추진한다. 또 산업부 등과 함께 가상통화 채굴업의 산업단지 불법입주도 단속한다. 관세청 등 관계기관과 가상화폐 거래자금 환치기 실태조사 및 합동단속도 진행한다.

◇제도권 편입 신호탄인가

정부는 조속한 시일 내 각종 요건을 갖추지 않고서는 가상화폐 거래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역으로 해석하면 전제 요건을 충족하면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일본과 비슷한 방침으로 읽힐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대책도 비슷한 기류다. 공정위는 현재 4개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의 약관을 심사 중이며, 나머지 거래소에 대해서도 약관 불공정여부를 일제 직권조사한다.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해킹·개인정보 유출사고 예방을 위해 거래소를 주기적으로 점검해 정보통신망법 위반시 제재하기로 했다. 개인정보 유출 등 지속적 법규위반 사업자에 대해 '서비스 임시 중지 조치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개인정보 유출 시 과징금 부과기준 상향도 추진한다.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가상화폐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 여부'를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거래 인정=제도권 편입'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금융기관이 가세해 투기심리를 조장할 수 없도록 막겠지만, 블록체인 등 기술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정책 노력을 하겠다는 금융당국 입장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 변호사는 “현행 법령 상 금융위가 내건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규율 마련을 위해선 선물 등 금융투자상품으로 규정하지 않고는 규제 방법이 없다”면서 “당장 입법조치에 나서겠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마치 일본과 유사한 형태로 입법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금융(투자)상품이 아닌 일반적인 재화, 용역, 서비스는 법적 규제 정도가 매우 낮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우리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유사수신행위로 몰아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아닌 걸로 나왔다”며 “정부가 말한 규제안에서 건강하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대응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금융상품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미 금융거래로 볼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규제가 나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열쇠는 은행 '계좌 유지 여부'

물론 가상화폐 거래소 사업 허용이라고 보기에는 남은 변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 은행권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이용시 필요한 계좌 중단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 대상 계좌 발급을 내달부터 중단한다. 기업은행도 기존 회원에게만 서비스하고, 추가 계좌 발급은 해주지 않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가상화폐 거래에는 반드시 가상화폐 계좌가 필요하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국내 은행과 가상계좌 발급 계약을 맺는다. 사실상 국내 거래소 운영은 은행권 협조 여부에 달렸다.

이날 최흥식 금융감독원장도 “제도권 금융회사가 직접적으로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금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박녹선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가상화폐 규제안이 보도된 이후에도 비트코인 시세 등 시장 반응은 미미하다”면서 “가상화폐 규제 방안의 첫 단추가 꿰어진 셈이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안이 구체화되는 것을 지켜봐야한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사업에 정통한 한 인사는 “현재 정부 규제 방안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긍정적 안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기존 금융회사 협조가 필요한 자금세탁방지나 추적을 위한 조치는 은행권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 같은 보이지 않는 금융규제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전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김명희 경제금융증권 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