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운, 故 박종철 열사가 죽음으로 지킨 선배…현재 어떻게 지내나보니 '충격'

사진=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다룬 영화 1987이 흥행하면서, 박종철 선배 박종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사진=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다룬 영화 1987이 흥행하면서, 박종철 선배 박종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박종철 선배 박종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다룬 영화 1987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

 

故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 14일 고문사했다. 그는 13일 자정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로 불법 연행돼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했다.

 

그의 죄라면 박종운을 이를 알고 지낸 거였다. 박종운(61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81학번)은 학내 서클 ‘대학문화연구회’선배로, 84년 결성된 ‘민주화추진위원회’건으로 85년부터 수배 중이었다.

고문수사관들은 박종철을 고문하면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 때 당시는 누구나 그처럼 끌려갈 수 있었고, 또 실제로 끌려가 고문당하고도 법적 구제는커녕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제대로 못 하던 시절이었다.

 

'박종운이 어디 있느냐?'는 심문에 박종철은 선배의 소재를 발설하지 않고 갖은 고문을 견디다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이후 박종운은 2000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서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홍보 포스터 속 박종운은 "이명박과 함께! 뉴타운+지하철!"이라는 문구를 이용해 지지자들의 한표를 호소했다.

 사건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써 군부독재 반대 시위를 이끈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박종운이 그 당을 선택해서 갔을 때 박종철씨 유가족이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내 아들을 죽인 사람들과 같은 진영으로 갔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한편, 영화 '1987'은 지난 8일 주말 이틀간 1천93개 스크린에서 85만6천67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전자신문인터넷 윤민지 기자 (yun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