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北 제안한 '남북정상회담'…다양한 외교적 변수 속에 청와대 '고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하면서 남북정상회담 성사 기대감이 높아졌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남북 화해 모드 조성에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남북대화 성사로 남북 경협도 기지개를 켜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반면에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나라는 남북 정세가 급격하게 바뀌면서 미국, 일본, 중국 등 복잡하게 얽힌 국제관계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후 이어질 한미연합훈련 재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등 리스크 요인도 여전하다. 북한 측의 방남을 두고 불거졌던 국내 여론 분열도 변수다. 상징 차원을 넘어 실제 남북관계 개선과 구체적 조치로 나아가기엔 갈 길이 멀다.

◇北 김여정의 방남…남북관계 변곡점

'북한의 실세' 김여정 부부장을 앞세운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9일부터 한국에 체류했다. 방남 첫날인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참관하고, 이튿날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했다. 11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오찬에 이어 저녁에는 북한예술단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을 문재인 대통령 등과 함께 관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10일 청와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김 부부장은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면서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며 남북정상회담을 공식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방북 제안에 '여건'을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나가자”며 남북정상회담 전 선행돼야 할 전제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여건'은 북핵문제의 진전으로 해석된다. 북미 간 대화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어야 남북관계 발전도 순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북한 대표단에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대화에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3월 말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연합훈련이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에 극도의 거부감을 가졌다.

한미는 다음달 9~18일 개최되는 평창패럴림픽 이후인 3월 말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것으로 조율했다. 사실상 3월 말 전에 북미 간 대화가 이뤄져야 어렵게 복원 첫 발을 뗀 남북관계가 평화모드로 이어진다.

북한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2박 3일 간 방한 일정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 등 북한 측 인사과의 조우를 피했다.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오히려 탈북자와의 면담 등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강도 높게 지적했다. 북미 대화의 전제 조건이 '비핵화'라는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 졌다.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입장차를 줄이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북경협 기대감도 조심스레…'한미연합훈련' 최대 고비

지난해 말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남북 화해 국면이 마련되면서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도 조심스레 부각된다. 그동안 남북 경협은 정치적 요인으로 부침을 거듭했다. 올림픽 계기로 전개된 남북화해 모드로 급진전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남북 경협의 상징적 존재였던 '개성공단' 재개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개성공단은 지난 2016년 2월 완전히 중단된 이후 2년째 가동이 멈췄다.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시스템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우리 만의 판단으로 운영을 재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개성공단 운영 재개 역시 북미 간 비핵화 대화를 통한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돼야 협의할 수 있는 카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 6일 개성공단포럼에서 “북미 간 비핵화 대화가 열리고, 낮은 단계에서라도 의미 있는 합의가 나와야 경제협력을 재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여건' 언급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방북 요청에 응하는 것은 대북제재 파기 등 한국 정부의 국제신뢰를 단번에 잃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정치권 반응도 크게 엇갈린다. 여당은 '북핵 폐기를 위해서라도 먼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당은 '북핵 폐기가 우선돼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여건을 만들어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자고 한 만큼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상호 간 노력과 주변국의 협력이 담보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핵 폐기를 전제로 한 남북 정상회담만이 가능하다”며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에 말려드는 정부야말로 일촉즉발 위기의 한반도에 있어 가장 위험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평창 올림픽 계기 조성된 남북 만남 성사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연합훈련을 데드라인으로 놓고 미국을 포함한 각국을 대상으로 설득작업을 벌인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오도록 국제사회에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렵게 남북관계 개선 기회가 온 만큼 국제사회 설득에 집중하고 다각도의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