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택의 과학국정]<7>가상통화와 정부의 역할

[임춘택의 과학국정]<7>가상통화와 정부의 역할

2009년에 새로운 광물이 출현했다.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도 사람이 모이고 시장도 형성됐다. 가격이 폭등하자 강도와 사기꾼도 꼬였다. 애들까지 뛰어들자 보안관이 나섰다. 광물은 비트코인이고, 보안관은 금융 당국이다.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실명제를 도입하고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기로 했다. 불법과 무질서를 방치하기보다 가상화폐를 제도화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블록체인은 활성화하기로 했으니 가상화폐만 집중 검토한다.

첫째 가상화폐의 정체성 문제다. 암호화폐와는 어떻게 다른가. 가상화폐는 일종의 디지털화폐로, 아무나 발행하고 통용할 수 있다. 게임 머니,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 포인트, 디지털 상품권도 일종의 가상화폐다. 지금 화제가 된 것은 암호화폐다. 이는 암호 기술이 적용된 디지털화폐로, 블록체인에 의해 신뢰가 보장된다. 이에 따라서 암호화폐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둘째 암호화폐의 가치 문제다. 단순한 전자신호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장차 달러를 대체할 글로벌 화폐라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화폐는 교환 가치, 안정성, 신뢰성 등이 있어야 한다. 현재 암호화폐 가치는 세계 통화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를 받는 가게는 국내에 300개도 안 된다. 범용 결제 수단이 아니다. 1년에 20~80배 폭등했는가 하면 하루에 50% 폭락하기도 한다. 교환 가치와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화폐 자격이 없다고 해서 '가상통화'라고도 부른다.

이스라엘 역사학 교수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화폐는 국가, 종교와 더불어 인류 문명을 가능케 한 상상 속의 약속이다. 어떤 화폐도 그 자체는 별 가치가 없으며, 반드시 교환되지도 않는다. 환율도 변한다. 암호화폐가 모래일지 보석일지는 알 수 없다. 가치는 시장이 정할 문제다.

셋째 암호화폐 거래 규제 문제다. 거래실명제는 범죄 예방과 과세 근거 마련에 기여할 것이다. 금융실명제 취지에도 부합한다. 다만 일반 금융 거래와 달리 과도하게 계좌 개설을 제한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사기, 해킹, 불법 거래 등은 금융 범죄로 다루면 된다. 소액의 외화 거래나 결제 등 암호화폐의 순기능은 활성화해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도 중국은 강하게 거래를 규제하지만 미국, 일본, 독일, 호주 등은 허용한다.

넷째 암호화폐 발행 규제 문제다. 기업공개(IPO)로 주식을 발행해서 자금을 모으듯 기업은 암호화폐공개(ICO)로 자금을 모을 수 있다. 주식과 기능이 유사해 암호주식이라고도 한다. 정부는 무분별한 ICO로 인한 사기 피해를 우려, 금지를 원칙으로 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금지한다.

반면에 영국·미국은 위험을 경고하는 수준이며, 스위스는 암호화폐 허브 국가를 선언했다. 지난해에 미국에서 6200억원, 스위스에서 5800억원의 ICO가 각각 이뤄졌다. ICO를 금지하면 투자 자본이 해외로 나간다. 자격 요건을 엄격히 하되 허용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은 국가 주도로 암호화폐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원구청은 2월부터 지역 암호화폐를 도입했다. 공공 암호화폐는 교환 가치와 안정성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미래 화폐로서 주목된다.

다섯째 암호화폐의 기술 문제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으로 신뢰성이 높지만 암호화폐거래소의 신뢰성과는 완전 별개다. 그동안 암호화폐 관련 해킹·사기 사고는 거래소에 집중됐다. 취약한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의 집중 보강이 필요하다. 거래소 등급제 도입도 요구된다. 암호화폐 거래 승인 지연도 문제다. 예컨대 리플은 4초, 비트코인은 10분 이상 각각 걸린다. 환경 문제도 있다. 일부 암호화폐의 채굴과 운영에는 막대한 전력이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암호화폐의 경제·사회 문제다. 암호화폐 관련 과세·관세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암호화폐 통화관리 대책도 필요하다. 비트코인처럼 상위 4%가 97%를 소유하는 구조 문제도 풀어야 한다. 보안관이 손을 놓으면 무법천지가 되고, 영업에 개입하면 규제 왕국이 된다. 암호화폐의 거품을 걷어내고 건강한 시장을 만드는 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ctrim@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