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화병(火病)에 걸린 전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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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조 재료연구소 엔지니어링세라믹연구실장.
<박영조 재료연구소 엔지니어링세라믹연구실장.>

지구가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 온실가스로 말미암아 지구 밖으로의 열 방출이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는 화병(火病)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 지구가 열 받는 것처럼 내부의 열을 발산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다가 나타나는 질병이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펄쩍펄쩍 뛰는 것도 열 방출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 온난화 현상 메커니즘은 사람의 화병과 유사하다.

다종다양한 전자기기도 화병에 시달린다. 전자기기의 오작동이나 고장의 주원인은 작동 도중에 발생하는 열의 배출 효과가 시원찮아서 나타나는 과열이다. 기기의 온도가 과도하게 상승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길을 걷거나 운전 도중에 한 번씩 목격하는 이빨 빠진 발광다이오드(LED) 신호등은 십중팔구 열 문제에서 기인한다. 열이 훨씬 많이 발생하는 백열등도 별 문제가 없는데 이보다 열 발생이 적은 LED 전구가 더 많이 고장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열등에서 나오는 열은 빛과 같은 방향의 공기 중으로 쉽게 방출된다. 그러나 LED 전구의 열은 빛의 반대 방향인 전구의 후단으로 전달돼 방출로 이어지는 어려운 경로를 밟아야 하는 게 그 이유다.

유튜브에는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열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재미있는 동영상이 많다. 'CPU egg fry'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노트북을 뒤집어서 덮개를 연 후 내부의 작은 칩 위에 알루미늄 포일을 깔고 그 위에 계란프라이 또는 햄버거 패티를 굽는 영상을 찾을 수 있다.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열이 주방의 가스레인지만큼이나 세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영상이다.

최신 스마트폰은 거의 모든 기종에 방수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초창기에 나온 스마트폰에 방수 기능이 없던 이유는 방열 문제 때문이었다.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내외부에 기밀성을 부여하는 순간 열 방출도 그만큼 어려워지게 돼 있다.

그러나 기밀성을 강화하면서 방열 기능을 함께 높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방수 기능은 보편화됐다.

과거에 방열 문제는 그리 큰 이슈가 아니었다.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은 각종 소자와 진공관을 얼기설기 엮은 프레임에다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단 구조였다. 외부 선풍기 한 대로 냉각이 가능했다. 기술이 계속 발달하면서 전자기기와 내부 부품들은 경박단소(輕薄短小)화 됐고, 이에 따라 화병 우려와 문제도 커지게 된 것이다.

원자로의 전력 밀도는 약 100W/㎠다. 현재 웬만한 고출력 전자기기의 발열량이 이와 유사한 수준이다.

기존에는 기기의 구조 개선을 통해 방열 문제에 대응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한계에 다다랐다. 전문가들은 발생한 열을 밖으로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고열전도도 소재의 개발만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 말하고 있다.

전자기기 내부에는 열이 발생하는 칩과 알루미늄 냉각핀 사이에 기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기판 위에 다양한 칩들을 부착하고, 이 칩들을 회로 배선으로 연결한 구조다. 이에 따라서 이 기판 소재는 전기학으로는 부도체, 열학으로는 도체라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 아래 고열전도도 소재로 부각되고 있는 세라믹 소재는 보통 전기와 열에 부도체 특성을 띤다.

그러나 질화규소, 질화알루미늄 등 제한된 몇 종의 세라믹스는 조성 개발이나 공정 고도화에 따라 절연성을 띠는 동시에 알루미늄보다 높은 열전도성 기능 구현이 가능하다.

고열전도성 세라믹스를 개발하고 이를 전자기기 발열 문제에 응용, 전자기기의 화병을 원천 차단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박영조 재료연구소 엔지니어링세라믹연구실장 yjpark87@kim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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