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국가R&D 예타, 신속·투명·유연하게

올해는 국내 우주 분야에 위성 3대 발사가 예정됐다. 8월에 차세대 소형위성 1호, 10월에 시험 발사체, 11월 이후 정지궤도 복합위성 2A호를 발사한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국민 앞에 선보이면서 모처럼 기지개를 활짝 켠다.

신의섭 한국연구재단 우주기술단장
신의섭 한국연구재단 우주기술단장

우주 분야는 국가 주도형 대표 사업이다. 때마침 새 옷으로 갈아입은 제3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에 따라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GPS), 달 착륙선, 조기 경보 위성을 비롯하여 여러 신규 사업의 기획을 준비한다.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이 시행되기 위한 첫 관문격인 예비타당성조사(예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국민 생활은 물론 국가 안전에 큰 도움이 되는 우주 사업은 잘만 준비하면 예타 고비를 넘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낙관은 금물이다. 문제 가운데 하나는 예타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예타 업무를 주관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평균 조사 기간이 약 13개월 걸린다.

“기획은 잘할 테니까 빨리 좀 합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북한은 미사일을 펑펑 쏘아 대고 미국의 한 업체는 전기자동차를 실은 우주 로켓을 발사, 우주의 생생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시대다. 지금까지 언급한 우주 분야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바람을 타고 더욱 빨라지는 기술과 시장 변화 속도에 대응해야 한다. 이런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진도를 나가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위기는 기회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다. 때마침 올해 4월부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예타를 위탁 수행하면서 제도와 운영을 종합 쇄신한다고 한다. 이 기회에 특별히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빠르고 투명하며 유연한 예타다.

과학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속도감 있는 투자를 말한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로 R&D 투자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동안 보지 못한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어떤 기술이 상상치 못한 융합을 통해 출현할 지 예측하긴 어렵다.

빠른 투자가 적절했는지 예측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정부 투자가 적시(摘示)였다는 답을 찾기 위해 최소한 한발 더 빠른 대응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마침 예타 절차가 간소화된다고 한다. 정부의 빠른 움직임은 과학기술의 골든타임을 잡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제도가 투명하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려다. 예타 과정과 결과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지며, 이는 곧 자신이 있다는 의미이다. 기업이 연구비를 투자하고 시행하는 민간 R&D 사업의 주인은 기업이다. 법을 어기지 않는다면 굳이 그 과정이나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투명하지 않더라도 뭐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국가 R&D 사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당연히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국가가 하려는 R&D 사업은 국민의 삶에 큰 도움이 되는가.' '국민이 진정 원하고 있는가.' 국가 R&D 예타는 이런 기본 물음에 응답하는 최초 과정이다.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대원칙이다. 예타 과정에서의 논의와 의사 결정 자료를 온라인으로 공유할 수 있다.

제도가 유연하다는 것은 연구자에 대한 배려다. 과학기술은 분야마다 다양한 특성을 띠고 있다. R&D 목표도 다를 수 있다. 창의 및 도전성 강한 사업은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경제 성과와 같은 획일화된 잣대가 아니라 유연한 평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운영 관점에서는 재도전을 보장하는 유연성을 간과하면 안 된다. 사업 미시행에 따른 부담이 서로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간에 사업 계획 변경을 허용하면 이에 비례해서 예타 기간이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진다. 결국 '기승전, 기획'이다. 예타의 기본 바탕에는 충실한 사업 기획이 있다. 훌륭한 기획에 연구자의 전문성은 필수다. 부처와 전문기관 담당자의 깊은 생각, 경험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개인이나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 온 물질 및 정신 과정의 산물을 문화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예타도 문화다. 과학기술계의 바람이 담겨 있는 문화는 빠를수록 힘차고, 투명할수록 건강하며, 유연할수록 번성할 것이다.

신의섭 한국연구재단 우주기술단장 esshin@nr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