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저녁이 있는 삶'...지속 가능한 대한민국 향한 해답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

서울 아파트값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출생아 수는 지난해 35만7000여명으로 사상 처음 4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합계 출산율은 1.05명으로 1970년 출생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저치다.

우리는 인구 절벽이라는 가파른 낭떠러지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어린 시절 골목마다 들려오던 아기 울음소리와 출산을 알리는 금줄은 낯선 과거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저출산·고령화는 추상의 미래가 아니라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나라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과제가 됐다.

지난 11년 동안 저출산 대책으로 국가 예산 100조원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현재 중위 연령은 41세다. 40년 뒤에는 무려 58세가 될 것이라고 확정한다. 일회성·산별성 예산 투입이나 국가 전체의 출산율을 높이려는 고민 없이 지자체별로 인구를 늘리기 위한 출산장려금은 결국 '제로섬'으로 귀결된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꺼져 가는 성장 동력을 되살리기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필자는 그 대안이 '저녁이 있는 삶' 구현을 통한 일과 삶의 균형 회복,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이 함께 가는 미래를 여는 것이라고 믿는다. 먼저 살인적 노동으로 '죽도록 일하다가 정말로 사람이 죽고야 마는 비극적인 현실'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

한국 노동 시간은 2016년 기준 2069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35개국 평균과 비교해도 무려 305시간을 더 일한다.

더 이상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로 청년의 희생과 헌신을 강요해선 안 된다. 또 포괄임금산정제라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어서 단 몇 푼의 수당을 쥐어준 채 타인의 일상, 건강, 행복을 침해하는 위선과 합리화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은 '747(7% 경제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세계 7대 강국 진입)'로 대표되는 '국민성공시대'에 표를 던졌다. 5년 뒤 손학규 후보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많은 이에게 또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시대를 앞서간 손학규 후보의 공약은 2017년 대선에서 주요 후보가 저마다 '칼퇴근' 공약을 들고 나오며 시대정신으로 우뚝 섰다.

국회도 발을 맞췄다. 필자가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저녁 있는 삶' 법제화를 위한 이른바 '칼퇴근 법'을 발의한 궁극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골자는 포괄산정임금계약을 제한해서 이를 위반하는 사용자를 처벌하는 한편 근로자의 출퇴근 시간 기록 의무화, 초과 근무를 기준 이상으로 시킨 사업주에게 '장시간근로유발부담금'을 부담시키자는 내용이다.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사례도 충분하다. 핀란드는 정규 노동 시간, 초과 노동 시간 등을 세세하게 분류해서 2년 동안 보관한다. 독일은 하루 8시간이 넘는 근로 시간을 기록한다.

필자는 남성 근로자의 돌봄권 보장을 위해 배우자의 출산 휴가를 대폭 연장하고, 임신한 여성근로자가 근무 도중에 건강 진단 시간을 청구할 수 있음을 사용자가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법안 등을 발의했다.

2월 임시국회에서는 사실상 무제한 연장 근로를 가능케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죽음의 일터'로 근로자들을 내모는 왜곡된 사회 구조의 대전환을 목표로 꾸준한 의정 활동을 경주해 왔다.

사회는 느리지만 분명 한 걸음씩 진전한다. '워라밸'이라는 신조어가 상식이 됐고, 장시간 노동이 미덕으로 치부되던 세상이 저물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에 비해 국민의 행복 지수가 턱없이 낮다. 일과 가정이 행복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주5일 근무의 상식화, 휴일의 법정화, 가정의 행복화'를 향한 희망의 시대,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희망차게 살아가는 세상의 시작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다.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수원시갑 장안구) leecy@assembl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