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봄꽃의 과학

이른 봄이 지나갈 때면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온다. 날이 따뜻해지던 차라 추위는 더 매섭다. 며칠 전 몸소 겪었다. 눈발까지 날렸다. 꽃이 피는 걸 시샘하는 '꽃샘 추위'다. 꽃샘추위가 왔다는 건 꽃 필 시기도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올해 봄꽃은 예년보다 빨리 필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에는 꽃샘 추위 와중에도 벚꽃이 폈다. 제주지방기상청은 지난 22일 벚꽃이 개화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3월 28일보다 6일 빠른 개화다. 진달래, 개나리 등 나머지 봄꽃도 평년보다 빨리 필 것으로 예상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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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도 3월 28일부터 4월 7일 사이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개화한다. 이들 봄꽃은 개화 후 1주일 정도면 만개한다. 4월 초·중순이면 거리마다 가득 핀 봄꽃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봄꽃의 절정은 보통 1주일에서 10일 가량 지속된다.

봄꽃의 개화는 기준목을 살펴 판단한다. 기상관측기관은 지역마다 표준 관측목을 두고 있는데, 이 관측목 가지 하나에 세 송이 이상 꽃이 피면 '개화'를 선언한다. 올해 봄꽃이 예년보다 빨리 핀 것은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3월 평균 기온이 예년보다 높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시적인 추위가 있었지만 봄 날씨 전반은 더 따뜻했다는 뜻이다.

꽃은 봄이 되면 약속을 한 듯 찾아온다. 때 아닌 추위가 오든 눈발이 날리든 약속은 어기지 않는다. 꽃은 봄을 아는 셈이다. 과학계는 식물이 꽃 피울 시간을 알아차리는 원리를 오래 전부터 연구했다. 기온, 낮의 길이, 일조량 등이 개화 시기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들은 꽃이 특정 환경을 알아차리는 구조를 더 깊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식물이 계절을 구분하는 기본 요소는 24시간 단위의 '생물시계'다. 생물 시계 덕분에 식물은 낮의 길이(광주기)를 구분한다. 광주기, 온도 변화를 감지해 적당한 환경이 되면 꽃을 틔운다. 과학자들은 오랜 관찰을 통해 낮이 길 때 꽃을 피우는 장일식물, 낮이 짧을 때 꽃을 피우는 단일식물, 광주기 영향을 적게 받는 중일식물을 구분했다.

개나리, 진달래 같은 봄꽃이 장일식물에 해당한다.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 국화는 대표적인 단일식물이다. 식물은 '온도 취향'도 다양하다. 봄꽃은 저온 환경을 어느 정도 겪은 뒤라야 핀다. 커피나무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때 꽃이 핀다. 꽃이 다양한 광주기, 온도 환경의 영향으로 핀다는 것을 규명해도 의문은 남는다.

환경 변화가 개화로 연결되는 매커니즘이다. 1900년대 초 과학자들은 식물이 광주기, 온도를 인지한 뒤 꽃을 피우는 데는 개화를 유도하는 호르몬 작용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1930년대 러시아 과학자 미하일 차일라키얀이 이 호르몬을 '플로리겐'으로 명명했다. 이후 과학계는 70여 년 간 플로리겐 정체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지속했다.

플로리겐의 존재는 접붙이기 실험에서 입증됐다. 실험은 일조 시간이 짧아야 꽃을 피우는 단일식물 대상으로 이뤄졌다. 우선 두 종류의 생육 환경을 준비한다. 한 쪽은 꽃이 잘 자라도록 적은 일조량, 한 쪽은 꽃이 피지 않도록 많은 일조량으로 둔다. 일조량이 많은 환경에 놓인 식물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때 다른 환경에서 꽃을 피운 식물을 여기에 접붙이기 하면, 놀랍게도 꽃이 핀다.

접붙이기 한 식물에 개화를 유도하는 호르몬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호르몬이 꽃이 필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식물의 꽃을 피운 것이다. 플로리겐의 존재가 입증된 후에도 이 물질의 구체적인 작용 매커니즘은 한 동안 수수께끼로 남았다. 생화학적 방법으로 플로리겐을 추출, 분석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1900년대 말에 들어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 애기장대와 유전자 과학의 등장 덕분이다. 애기장대는 식물학 분야의 대표적인 모델 식물로, 돌연변이 유전자를 복제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돌연변이를 일으켜 꽃이 피는 애기장대, 꽃이 피지 않는 애기장대를 만들고 어떤 유전자가 개화에 영향을 주는지 추적하는 방법이 시도됐다.

1995년 독일과 일본의 과학자가 'FT 유전자'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FT유전자가 FT단백질을 만들고, 이 단백질 일부가 호르몬으로 작용한다고 봤다. FT유전자 발견으로 플로리겐 연구는 일대 전환을 맞았다. 2003년에는 FT 유전자가 식물의 관다발에서 발현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후 연구에서 식물이 잎을 통해 광주기를 감지해 FT단백질을 만들고, 이를 생장점으로 이동시켜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