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112>적응 관성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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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파이어스톤은 업계 최고 우량 기업이었다. 그러나 미쉐린이 라디얼 타이어로 미국 시장을 뒤흔들자 파이어스톤은 성공 경험이 자신에게 최악의 적임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로 전략하고 만다.

한때 창의 기업들이 한순간 나락으로 추락한다. 이것만큼 당황스러운 주제도 드물다. 상식이 말하는 정답은 변화에 대한 무관심이다. 과연 그럴까. 도널드 설 영국 런던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찾은 해답은 다르다. 자동차 불빛에 눈먼 사슴처럼 발을 묶은 것은 적응 관성이라 부르는 것이다.

파이어스톤을 보자. 1900년에 설립된 이래 거리낌이 없었다. 헨리 포드와는 사돈지간이면서 디트로이트 빅3 자동차 메이커를 고객으로 뒀다. '고객과 직원을 가족으로'란 창업자 하비 파이어스톤의 경영 철학은 '당대 모범'이었다. 빅3 주문이 늘면 신속히 고품질 타이어를 공급했다. 최고 고객, 성공 경험, 애사심 충만한 직원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발단은 1966년 시어스가 미쉐린의 라디얼 타이어를 팔면서부터다. 실상 타이어는 고무외피에 여러 보강재를 두른 것이다. 바이어스 타이어는 보강재를 40도씩 엇갈려 감았다. 미쉐린은 벨트에 보강재를 직각으로 붙여 라디얼 타이어로 내놓는다. 접지력과 마모성에서 월등했다.

파이어스톤도 라디얼 타이어가 대세임을 잘 알고 있었다. 4억달러를 투자해 새 공장을 짓고, 기존 라인을 개수한다. 문제는 품질 관리였다. 제품만 바뀌었지 생산 관리는 기존 방식을 고수했다. 기존의 바이어스 타이어 공장도 그래도 둔다. 파이어스톤은 한 가족이라는 철학에 발목이 잡힌다.

1979년이 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생산 시설 절반만 가동했다. 바이어스 타이어의 재고로 창고까지 임대해야 할 판이었다. 불량품 리콜 탓에 2억달러를 날렸다. 역사상 최대인 870만개가 리콜된다. 몇 번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시달리다가 결국 일본계 브리지스톤에 넘어간다. 미국 5대 타이어회사 가운데 굿이어만이 이 혼란기를 온전히 버텨 낸다.

관성이란 뜻의 영어 단어 'inertia'의 어원은 라틴어 'iners'다. '멈추다' '쉬다'란 뜻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의 법칙도 동일하다. 다른 힘이 없다면 물체는 항상 기존 운동 상태대로 움직이려 한다. 또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정지한 상태로 유지된다.

기업 경영에도 두 가지 관성이 있다. 멈춘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다. 꼭 멈추지 않았다고 하여 관성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변하지만 기존처럼 하는 것 역시 관성이다. 그래서 관습, 관행, 관성은 닮아 있다.

역설이지만 파이어스톤은 변화에 민감했고,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단지 한 가지 결함이 있었다면 모든 걸 기존 방식과 경험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간혹 아무 문제가 없지만 무언가를 기정사실로 취급할 때 문제는 시작된다. 기술이 변할 때 관행과 관습도 함께 변해야 한다. 혁신은 페이트 어컴플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을 때 적응 관성(active inertia)에 빠지고, 결국 추락하게 된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