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VC만 100곳' 中창업 심장 카페거리 가 보니

카페거리 전경.(사진=전자신문DB)
카페거리 전경.(사진=전자신문DB)

지난 12일 중국판 실리콘밸리 중관춘(과학기술단지) 카페거리. 어림잡아 너비 5m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각양각색 간판으로 도배된 10여개 건물이 마주보고 있었다. 광활한 중국 대륙을 생각하면 아담한 규모다.

이곳은 중국 창업 심장과 같은 곳이다. 벤처캐피털(VC) 100곳이 몰려 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카페는 항상 꿈을 키우는 창업가들로 북적인다.

카페거리는 특별한 사연을 안고 있다. 원래는 서점 거리로 불렸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설 자리를 잃은 서점이 카페로 대체된 것이다. 처쿠카페가 2010년에 이 같은 바람을 일으켰다. 인터넷을 무제한 제공하는 창업 카페를 지향하며 문을 열었다. 이후 비슷한 카페가 주변 건물마다 들어서면서 창업 메카로 떠올랐다.

호주머니 가벼운 창업가들은 카페를 사무실 삼아 일했다. 1000명이 넘는 창업가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화룡점정은 리커창 총리가 찍었다. 카페거리 초창기에 가게를 연 3W카페를 2015년에 방문, “여기가 중국 창업의 중심”이라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자본이 몰리기 시작했다. VC, 은행, 부동산 기업이 카페거리 내 건물을 무섭게 사들였다. 단숨에 100곳 넘는 VC가 카페거리를 장악했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전체 VC 숫자가 200곳이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거센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3W카페는 웅장한 모습으로 변했다. 1층은 과거처럼 카페지만 2층에 스타트업 대상 데모데이를 열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됐다. 최대 10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투자자와 스타트업 간 소통 자리가 수시로 마련된다.

창업하기도 편해졌다. 카페거리를 운영하는 중국 정부의 부동산 공기업은 스타트업을 위해 법률·세무 상담 시설을 거리 한쪽에 꾸렸다. 세련되게 건물 외관을 꾸민 인텔 사무실도 눈에 띈다. 누구나 3D프린터와 컴퓨터를 쓸 수 있다.

블랙호스라는 정체 모를 입간판을 내건 곳도 인상 깊다. 예비 창업자에게 성공 노하우를 알려주는 학원이다. JD닷컴 사장, 엔젤펀드 대표, VC 관계자들이 강사로 나선다. 1년에 2~3개씩 상장사를 배출하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처쿠카페 내부.(사진=전자신문DB)
처쿠카페 내부.(사진=전자신문DB)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카페도 있다. 처쿠카페에 들어서면 옷가지를 구겨 넣은 여행 가방을 옆에 두고 노트북과 씨름하는 창업가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자릿세 명분으로 커피 한 잔을 시킨 뒤 하루 종일 이곳에서 일한다. 카페 구석에는 단골만의 자리도 있다. 카페 관계자는 “하루 한 차례 자리 정리를 한다”면서 “그러나 이곳만은 건들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처쿠카페는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창업 명소로 입소문을 탔다. 권한도 막강하다. 실력 있는 창업자가 정부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준다. 매일 점심시간에는 유망 스타트업 제품을 소개하는 자체 인터넷 방송을 한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같은 건물 4층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혁신센터(KIC)가 입주했다. 고영화 KIC 센터장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심정으로 카페거리 입성을 결정했다”면서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성공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8월 KIC 초대 센터장으로 부임했다.

KIC는 지난해 스타트업 25개사를 3개 기수로 나눠 키웠다. 투자 유치 550만달러, 매출 490만달러를 각각 거뒀다. 현재 네 번째 기수 10개 기업이 중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무선네트워크 보안 전문 기업 노르마를 비롯해 시력 데이터 추출 기술을 개발한 픽셀디스플레이, 인공지능(AI) 챗봇 플랫폼 머니브레인 등이 포함됐다.

올해부터는 알리바바 클라우드가 현지 투자 유치 및 멘토링을 지원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두 달여 전 KIC를 찾아 우리 스타트업에 힘을 실어 줬다.

조현수 픽셀디스플레이 매니저는 “카페거리를 보면 창업에 나서는 중국 사람들의 치열함과 열기를 느끼게 된다”면서 “이곳에서는 미니 기업공개(IR)가 수시로 열리기 때문에 기회를 잡기 위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