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차바이오텍 사례로 본 R&D 자산 가치 논란

[이슈분석]차바이오텍 사례로 본 R&D 자산 가치 논란

“올 것이 왔다.”

차바이오텍 관리종목 지정에서 촉발한 바이오 업계 '회계논란'은 금융감독원이 바이오 기업 10곳에 대한 회계감리 착수로 확대됐다. 곳곳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영업이익 뻥튀기' 행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국가 신성장 동력인 동시에 증시 주도 산업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는 바이오산업 민낯을 보여준다는 비판이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바이오산업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바이오산업에 맞는 연구개발(R&D) 가치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상시험 단계로 대변되는 R&D 과정 중 어느 선까지 자산으로 인식해야 할지, 임상시험이 없는 다른 산업과 형평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합의가 필요하다.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바이오산업. R&D 자산 가치 논란과 해소 방안을 살펴봤다.

◇R&D, 자산이냐 비용이냐

신약 개발은 신약후보물질 발굴을 시작으로 전임상(동물실험), 임상1~3상 시험, 인허가, 판매 과정을 거친다. 평균 신약 후보물질 1000만개 가운데 임상시험을 하는 것은 9개에 불과하다. 최종 제품을 판매하는 시간도 평균 15년 이상 소요된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투자한 금액도 엄청나다. 미국 제약사는 15년 동안 신약 개발을 위해 약 520조원을 쏟아 붓는다. 항공산업 5배, 소프트웨어 산업 2.5배에 이른다.

모든 R&D를 '비용'으로 봐야하는지. 통상 임상3상 진입은 상업화에 임박했다고 인식된다. 상업화 전이라도 기술 수출하면 매출이 발생한다.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도 개발 과정에서 자산으로 인식 가능한 경우는 많다.

문제는 회계처리 과정에서 해석이 다르다는 점이다. 차바이오텍은 상업화 실현 가능성, 시장성 등을 고려해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 회계법인은 비용으로 인식, '한정' 의견을 냈다. 해석 차이가 관리종목 지정에 이르렀다는 게 차바이오텍 주장이다.

해석 문제를 넘어 의도적으로 R&D 비용을 자산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상장·투자 등 외연 확대를 위해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연구개발비를 모두 손실 처리하면 매년 엄청난 적자를 기록한다. 상업화까지 10년 이상 소요되는 바이오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영업이익 상승 등을 위해 자산 처리 유혹이 크다.

신정섭 KB인베스트먼트 본부장은 “신약개발 기업은 진단이나 의료기기 등과 달리 모든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처리하면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다”면서 “R&D를 자산으로 처리하면 영업이익 등 객관적 지표가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등 착시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판단규정 미흡, 바이오산업 한계도 한몫

연구개발비를 비용 혹은 자산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미흡하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인식하려면 △무형자산을 완성할 기술적 실현 가능성 △무형자산을 완성해 사용하거나 판매하려는 기업 의도 △무형자산을 사용하거나 판매할 기업 능력 등을 충족해야 한다. 규정은 있지만 기술 전문성, 시장 불예측성, 오랜 R&D 기간 등을 고려할 때 관련 규정을 해석하는데 논란이 있다.

조완석 태성회계법인 상무(공인회계사)는 “무형자산 처리 관련 규정이 있지만 판단 기준을 두고 기업, 감독기관, 회계법인 간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다”면서 “특히 신약개발 영역은 기업, 시장 등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어 자산 혹은 비용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R&D 중심 바이오산업 태생적 한계가 영향을 미친다. 산업통상자원부 '2016년 바이오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 기업 980개 중 매출이 발생한 곳은 651개다. 전체 33% 이상은 매출 없이 R&D 단계에 머문다. 매출 10억원 미만 기업도 전체 65.4%(426개)를 차지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산업은 R&D 기간이 길고 중소기업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매출·순이익이 발생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면서 “투자 등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기업 가치를 올려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비 처리는 영업이익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금감원 조사 착수, '합리적 가이드라인' 필요

차바이오텍을 비롯해 셀트리온도 작년 3분기 보고서 기준 연구개발비 76%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 바이로메드 등 바이오 기업도 연구개발비 70~80%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가 비용으로 정정했다.

금감원은 12일 '2018년 회계감리업무 운영계획'을 발표하면서 차바이오텍을 포함, 제약·바이오기업 10곳을 감리 대상에 포함했다. 영업이익을 늘리기 위해 비용을 자산으로 처리한 사례가 있는지 살피겠다는 의도다. 실제 투자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정부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바이오 업계는 금융당국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자칫 성장세에 있는 바이오 기업을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고 가지 않을까 우려한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점진적으로 점검을 확대하고 이해당사자가 합의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회계처리 규정에서 모호한 연구개발비 처리 조항을 구체화하자는 요구다.

손 본부장은 “일부 국가에서 임상 3상에 이르면 자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획일적 규정은 아니더라도 혼란을 줄이기 위한 포괄적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상무는 “회계처리 규정에서 제시한 연구개발비 자산 처리 조항을 구체화, 세밀화해서 회계법인이나 감독기관이 판단할 근거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기업도 기술력이나 시장성 관련 정보를 상세히 제출하는데 설득력이 있어 다수 합의 가능성이 높다”고 제시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