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주 52시간 제도 안착, 유연 근무제가 해법

대학 캠퍼스 같은 정원에서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한다. 점심시간도 아닌데 구내식당에는 직원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밤이 되면 건물 창을 통해 새어 나온 불빛으로 주변이 빛난다. 프로젝트가 끝난 직원은 장기간 유급 휴가를 떠난다. 몇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위치한 실리콘밸리를 방문했을 때 본 모습이다.

부러웠다. 캠퍼스 같은 회사 시설보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이래서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를 기업의 요람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알았다. 일은 정말로 하고 싶어서 열정을 바쳐 일할 때 멋진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데스크라인]주 52시간 제도 안착, 유연 근무제가 해법

주 52시간 근무제를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산업계 뜨거운 감자다. 7월 1일부터 근로자 300인이 넘는 기업은 평일 40시간, 휴일 12시간 이상을 근무하면 안 된다. 300인 미만 기업은 2020년부터, 50인 미만은 2021년 7월부터 각각 적용된다.

해당 기업은 주 52시간 근무를 맞추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점심시간을 근무 시간에서 빼거나 오후 6시가 지나면 사무실 전기를 차단하는 방안도 나왔다. 어떤 기업은 업무 후 거래처 직원을 만나는 것도 업무이니 자제하라는 지침까지 나왔다.

헛웃음이 난다.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인지 근무 시간을 맞추는 게 우선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근무 시간을 법으로 강제할 정도로 우리 근로 환경이 안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일에 열정을 쏟는 실리콘밸리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도입 취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업계 걱정이 많다. 특정 기간에 정해진 인력을 투입하는 수주 사업 현장은 고민이 더 짙다. 정보기술(IT)서비스와 소프트웨어(SW)업계가 해당된다. 대부분 사업은 제안요청서(RFP)에 투입 인력을 정해 놓는다. 대가 산정 기준이 된다. 투입 인력은 정해진 반면에 사업 범위는 계약과 수행 단계를 거치면서 늘어난다. 주 52시간을 맞추면서 사업 성공 완료는 불가능하다.

업계는 해법으로 선택근무제를 제시한다. 선택근무제는 특정 기간 내 평균 주 52시간 근무 시간을 맞추면 되는 제도다. 예를 들어 10개월을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더라도 한 달 이상 유급휴가를 보낸다면 1년 평균 근무 시간은 주 52시간을 충족시키게 된다. 현재 많은 IT 기업이 프로젝트 투입 인력에 이를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법률로 선택근로제를 인정하는 기간이 1개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실에 맞지 않다. 최소 6개월에서 최장 1년으로 연장해야 한다.

해결해야 할 근본 문제도 있다. 정보화 사업 대가 산정을 개선해야 한다. 투입 인력 수로 대가를 산정하는 '헤드카운팅' 방식 아래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이 요원하다. 프로젝트 결과물을 대가 산정 기준으로 삼는 '펑크션 포인트' 방식 도입이 절실하다.

IT서비스와 SW 외에도 게임, 보안 등 여러 산업에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른다. 정부는 정책 시행 시 현장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도입되는 제도도 현장에 맞지 않으면 상황을 악화시킨다. 유연한 근로 제도로 우리나라 직장인도 미국 실리콘밸리 근무자처럼 열정을 바쳐 일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신혜권 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