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눈앞에 다가온 '보이스 퍼스트' 시대

아마존이 출시한 스마트스피커 '에코(Echo)'가 지난해 1000만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에코에는 스크린도, 키보드도 없다. 음성으로 명령하고 스피커를 통해 대답한다. '알렉사(Alexa)'라는 인공지능(AI)이 탑재돼 있다.

[ET단상]눈앞에 다가온 '보이스 퍼스트' 시대

알렉사와 연동되는 '스킬(Skills, 스마트폰의 앱에 해당)'이 1만5000개가 넘는다. 음악을 틀어주거나 날씨를 알려주는 것 외에 물건을 주문하고 돈을 이체하는 등 기능이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

'말하기'는 인간에게 가장 편리한 효율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말로는 한참을 이야기할 수 있어도 글로 써 달라는 요구에는 주저하게 된다. 생각을 문자로 옮기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펜과 종이를 챙겨야 하고, 분위기를 전할 수 없어 오해의 위험도 크다.

말 못하는 기계와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것은 커다란 숙제일 수밖에 없다. 온라인·오프라인 스위치는 기계와 소통을 위한 가장 단순한 장치다. 그러나 어렵고 복잡한 일을 맡겨야 하는 컴퓨터와는 정교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IT 기기 대중화는 결국 인간과 기계 사이의 단순한 효율 커뮤니케이션을 향한 도전의 과정이다.

컴퓨터와 이용자의 커뮤니케이션, 곧 유저 인터페이스(UI) 혁신은 시장과 산업의 판을 바꾼다. 애플은 '터치스크린'이라는 새로운 UI를 휴대폰에 적용했다. 키보드를 없애는 대신 화면을 키울 수 있었다. 휴대용 전화기가 다양한 작업이 가능한 작은 단말기로 바뀐 것이다. 2007년 애플은 시가 총액 기준으로 세계 70위에 불과했다. 아이폰 탄생 10년 이후인 지난해 애플은 시가 총액 1위에 올랐다.

음성 인식 AI 서비스를 먼저 선보인 것 또한 애플이다. 애플은 2011년 iOS 5의 새로운 기능으로 '시리(Siri)'를 탑재하고 '지능형 개인비서'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당시 애플의 접근은 최근 아마존의 전략과 달랐다. 애플의 시리는 스마트폰을 더 잘 쓰기 위한 터치스크린의 보조 수단이었다. 반면에 아마존 에코는 아예 스크린을 없앴다. 이용자를 스크린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이다.

아마존은 애플과 달리 일찌감치 알렉사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를 공개했다. 가전제조사, 콘텐츠사업자, 전자상거래업자 등 누구나 알렉사와 연동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했다. 전등, 가전제품, 쇼핑, 예약, 지도, 뉴스 등 집안의 모든 기기와 인터넷의 모든 정보가 알렉사에 연결돼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마존 에코는 주방을 장악하고 음성 기반 장보기 디바이스인 '대시 완드(Dash Wand)'는 냉장고, 인공지능 코디네이터 '에코 룩(Echo Look)'은 옷장을 점령할 것이다. 이용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아마존 생태계 안에서' 주문하도록 만들 것이다. 더 이상 클릭을 하며 최저가를 찾아 헤매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에코가 제안하는 두세 개의 추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보이스 인터페이스와 AI가 결합한 새로운 생태계는 빠른 속도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기반으로 서비스가 개선되고 좋아지니 이용자가 몰리는 선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승자 독식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보이스 인터페이스는 새로운 기회다. 개인의 일상만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산업 분야에서 폭 넓게 활용될 것이다. 이 변화는 구글과 애플이 가져가던 모바일 주도권의 판을 흔들게 될 것이다. 한국어에 대한 자연어 처리와 하드웨어 플랫폼은 국내 기업에 있는 강점이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박성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방송통신기획팀장 sc0314@kc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