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블록체인 현장을 가다]<2>네덜란드 -전력거래 개념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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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과 풍차의 나라, 토지 4분의 1이 해수면 보다 낮은 나라, 거스 히딩크와 오렌지 군단이 버티는 축구강국 등 네덜란드를 수식하는 단어는 많다. 필립스와 로열더치셸, ASML 등 기술과 자원 분야에도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낙농업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블록체인 선도국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네덜란드는 기술력과 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블록체인을 준비해 왔다. 지난해에는 경제부 주도로 블록체인 연합(The Dutch Blockchain Coalition)을 구성했다. 개인 정보 디지털화, 블록체인 활성화 환경 조성, 인적 자원 발굴 등 핵심 목표도 설정했다.

드 꺼블 입구.
<드 꺼블 입구.>

'드 꺼블(De Ceuvel)'은 이런 흐름과 달리 민간 주도로 이뤄진 블록체인 실증 현장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꺼블 마을'이다. 조선소로 오염됐던 부지를 민간 주도로 지속가능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 전력거래에 블록체인 개념을 이식했다.

드 꺼블은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버스 한 번이면 가는 조그마한 항구에 자리했다. 카페와 숙소, 공방, 스타트업 등이 모였다. 파주 헤이리 마을 초기 형태와 비슷하다. 네덜란드를 찾는 관광객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드 꺼블은 운하가 많은 네덜란드의 독특한 주거 형태인 '하우스 보트'로 이뤄졌다. 보트 위에 집을 얹은 형태다. 여기선 물 위에 떠있지는 않다. 하우스 보트 사이로 나무 데크 길이 둘러져 있다.

데크 길을 걷다 보면 하우스 보트 지붕 위로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어림잡아 150개가 넘는다. 모든 집에 다 있지는 않다. 지붕이 좁거나 나무 그늘이 있는 집은 제외다.

마을 운영자인 티초는 “연간 약 3만6000㎾h 전력을 생산한다”면서 “생산한 전력은 공동체 내에서 소모된다”고 설명했다.

꺼블 운영자인 티초가 발전현황과 암호화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꺼블 운영자인 티초가 발전현황과 암호화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생산 전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집이 부족한 집에 제공하는 식이다. 전력 거래 내역은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측정은 전자식 전력량계인 '스마트 미터'가 담당한다. 전력판매회사 스펙트럴과 전력량계 제조업체 알리안더가 시스템을 짰다.

마닉스 랑그스트라트 알리안더 전략담당은 “에너지 공급과 흐름이 다 기록되기 때문에 다툼이나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기존 전력을 되파는 구조와 달리 생산한 전력을 최대한 즉시 사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드 꺼블 커뮤니티 맵. 하우스보트별 전력생산과 소모량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드 꺼블 커뮤니티 맵. 하우스보트별 전력생산과 소모량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전력 생산과 소비 현황은 커뮤니티 맵에서 제공한다.

맵을 보면 태양광 발전으로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많은 하우스 보트는 녹색으로 표시된다. 생산한 전력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보여준다. 마우스를 하우스 보트에 갖다 대면 집 이름과 전력 생산·소비량을 알 수 있다.

특정 건물을 클릭하면 집 모양과 함께 태양광 발전량, 전력소비 내역을 그림으로 알려준다. 전력 소모는 냉난방과 가전기기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집집마다 전력소모를 줄이기 위해 채광창을 늘리고 LED로 바꿔달았다.

하단 송전탑 모양 아이콘을 클릭하면 전체 전력소비량이 나온다. 마을 내 전력소비량이 더 많으면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반대인 경우는 녹색이다. 밤이 되거나 구름이 껴서 발전이 안 되면 전체가 빨간색으로 변한다.

하우스 보트 거주자 웹페이지. 암호화폐 '줄리에뜨'가 지갑에 들어있다.
<하우스 보트 거주자 웹페이지. 암호화폐 '줄리에뜨'가 지갑에 들어있다.>

하우스 보트끼리 주고받은 기록을 기반으로 계정마다 암호화폐 '줄리에뜨(Jouliette)'가 지급된다. 국제 에너지 단위인 줄(Joule)에서 따왔다. 1줄리에뜨는 1㎾h다. 생산한 만큼 줄리에떼가 발행되고, 전력을 거래한 만큼 지갑에서 차감되거나 지급된다.

기존 태양광 발전사업자와 달리 생산한 잉여 전력을 되팔지 않는다. 마을 공동체 내에서 교환하도록 설계했다. 지갑 속 줄리에뜨는 전력 거래 외에 필요한 재화나 물품 교환에도 쓰인다.

드 꺼블 내에서 가장 큰 건물인 '카페 드 꺼블'에서는 음식이나 음료를 구입할 수도 있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카페에서 주변 하우스 보트로부터 부족한 전력을 받은 대신 음식이나 음료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아직 결제시스템을 갖추진 못했다. 이달 중 결제시스템이 완비되면 암호화폐로 제품 구매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하우스 보트마다 배터리를 추가하는 계획도 마련했다. 현재는 생산한 전력이 즉시 소비된다. 일조량이 많을 때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토록 한다는 구상이다.

랑그스트라트 알리안더 전략담당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이용한 드 꺼블 내 전력거래 방식으로 이상적인 마이크로 그리드 구현이 가능하다”면서 “알리안더는 이런 실험을 통해 전력량 흐름을 한 눈에 보고 전력 배분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페 드 꺼블 전경.
<카페 드 꺼블 전경.>

유창선 성장기업부 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