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택의 과학국정]<17>선진국형 국방 개혁 미룰 수 없다

[임춘택의 과학국정]<17>선진국형 국방 개혁 미룰 수 없다

'4·27 판문점 선언'으로 한반도 평화가 정착돼 가고 있는 분위기다. 1988년 7월 7일 노태우 정부의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 후 30년 만이다.

2005년의 참여정부 '국방개혁 2020'이나 2011년의 이명박 정부 '307계획' 또한 1991년 노태우 정부의 국방개혁안인 '818계획'에 연원을 두고 있다. 노태우 정부는 '민족자존, 민주화합, 균형발전, 통일번영'을 4대 국정 지표로 하여 북방외교와 자주국방을 병행 추진했다. 그 결과 공산권이던 중국·러시아와도 수교하고, 미국에 작전권 환수를 요구했다. 야박한 평가를 받아 온 노태우 정부를 현 국면에서 주목하고자 한다.

국방 개혁은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1987년부터 기산해도 30년 이상 해 왔다. 박정희 정권의 '반미 자주국방'을 포함하면 40년도 넘는다. 개혁은 일종의 수술이라 할 수 있다. 너무 오래, 자주 해서는 곤란하다. 미국, 중국 등 세계 각국이 국방 개혁을 했다. 대부분 10년 이내에 완료됐다. 왜 우리의 국방 개혁은 이렇게 더디고 미진한가.

첫째 국방 개혁 준비에 시간을 너무 허비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어김없이 국방개혁위원회가 꾸려졌다. 1~2년에 걸쳐 개혁안이 만들어지고, 여론 수렴을 거치면서 퇴역 장성과 일부 언론의 '개혁 부작용' 목소리가 증폭된다. 그러다 2~3년이 흐르면 단임제 대통령의 임기 말이 된다. 예컨대 국민의정부 국개위는 5년 동안 내내 개혁안만 다듬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참여정부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방부에 국개위를 두지 않고 대통령 직속 국방발전자문위원회만 뒀다. 2005년에는 여야 합의로 방위사업법을 제정, 방위사업청이 출범했다. 이와 함께 국방개혁기본법도 제정했다. 국방부 본부를 문민화하고, 3군 균형 발전을 도모하며, 2020년까지 병력을 50만으로 감축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제 2년여를 앞두고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국방 개혁은 '고장난 시계'였다.

이명박 정부는 국방정책실장을 민간인으로 임명, 국방문민화에 진일보했다. 그러나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시간을 낭비했다. 60명을 줄이겠다는 장군 수는 7명을 줄이는 데 그쳤다. 박근혜 정부는 그나마 2030년 이후로 미뤘다. 청와대부터 국방부까지 국방정책 라인 7명 전원을 특정 학교 출신으로 채우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둘째 과도한 전제 조건을 달아 국방 개혁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에서 연평균 8%의 국방비 증액이 이뤄졌지만 군은 국방 개혁 전제 조건으로 2020년까지 621조원의 국방비를 요구했다. 지난 40년 동안 북한보다 10배 넘는 국방비를 투자한 결과 우리는 압도하는 대북 우위 군사력을 보유하게 됐다. 미국은 국방 개혁을 추진하면서 국방비를 매년 3% 삭감했다. 그러면서 미군은 정예 강군이 됐다. 한국군은 이와 정반대 국방 개혁을 하면서도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에 반대, 개혁 시기를 2012년으로 늦췄다. 이마저도 여건 미성숙을 이유로 이명박 정부에서 2015년으로 연기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국군의 능력과 주변 안보 환경 등 '조건 충족'을 이유로 무기한 연기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에 전작권 조기 환수를 결정했다. 전작권은 당초 1997년에 환수하기로 한·미 간에 합의된 사안이지만 20년 이상 지체된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30년 묵은 과제다. 이미 충분히 준비했다. 더 이상의 전제 조건은 불필요하다. 한국군 주도 한반도 작전은 미국도 원하는 바다. 전작권은 우리 군의 정신을 강하게 한다. 강군이 돼야 한·미 동맹도 성숙해진다.

이번 국방 개혁은 과거 정부의 과오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개혁을 초반에 완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립군을 국군 역사의 효시로 삼은 것은 좋은 출발이다. 나아가 5·16과 12·12 쿠데타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본분에 충실한 정통 군인의 명예를 위해서도 그렇다. 국방의 목표도 한반도 전쟁 억지는 물론 동북아시아 평화 기여로 확대돼야 한다. 국방 운영은 미국 못지않은 선진국형이어야 한다. '과학국방'이 해법이다. 국방 연구개발은 개방 혁신을 지향하자. 한·미 동맹에 기반을 둔 자주국방으로 한반도 평화 체제를 이뤄 내자.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ctrim@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