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택의 과학국정]<18> 융합연구, 팀워크십으로 풀자

[임춘택의 과학국정]<18> 융합연구, 팀워크십으로 풀자

핵융합은 핵분열에 비해 장점이 많다. 같은 질량의 연료라 하더라도 방출되는 에너지가 막대하다. 방사능 폐기물도 적게 나온다. 그러나 높은 온도로 일정 공간에 가두는 게 어렵다. 융합할 원자핵 간 반발력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핵분열은 대체로 쉽다. 자연 상태에서도 원자량이 높은 원자핵은 저절로 붕괴된다. 이 때문에 먼저 상용화됐고, 문제점도 잘 알려졌다.

과학기술 연구도 이와 유사하다. 연구 과제는 저절로 잘게 분화된다. 너무 쪼개져서 나중에는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게 된다. 연구 결과가 나와도 파급력은 미미하다. 반면에 융합 연구는 성공하기 어렵지만 영향력이 핵융합처럼 강하다. 융합 연구로 세상에 없던 혁신 제품, 서비스, 시장이 생겨난다. 혁신 아이콘이던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예술, 인문학을 융합해 애플을 탄생시켰다. 구글 자율주행차는 자동차, 인공지능, 항법기술이 융합한 것이다. 융합 연구가 융합 산업을 낳고 융합 경제를 만든다. 국내 대학, 연구기관, 기업에도 '융합'을 붙인 조직이 많이 등장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융합 연구 성공 사례를 찾기 어려운가.

20년 전 영국 위성회사에 파견 근무를 한 적이 있다. 한·영 공동으로 위성 개발을 했다. 한국 팀은 열심히 일해도 효율이 절반에 불과했다. 조직 진단을 받아 보니 한국 팀은 80% 이상이 동질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좋은 걸로 착각했다는 사실이다. 서로 생각이 비슷하니 단합도 잘되고 의사소통도 잘돼 좋다고 봤다. 문제 해결 능력이 우수한 조직에는 다양한 사람이 섞여 있다. 큰 것을 잘 보는 사람, 치밀하게 일하는 사람, 적극 이끄는 사람, 차분히 잘 정리하는 사람 등이다.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필요로 하고, 위기 시 임기응변이 가능하다.

위성부터 자동차, 철도, 선박, 항공기, 드론, 로봇,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서로 이질이면서 융합을 해야만 하는 변증법 요소가 가득하다. 기계공학과 전자공학,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페이로드, 시스템과 기술 등이다. 그러나 이들의 기술 사상은 전혀 다르다. 예컨대 기계공학자와 전자공학자는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을 다루는 기계공학에 비해 전자공학에서는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프레임'을 기계공학에서는 구조물로 인식하지만 전자공학에서는 신호 체계로 이해한다. 똑같이 로봇을 설계해도 무게중심부터 고려하느냐 소요 전력을 따지느냐로 갈린다. 국방, 항공, 우주, 자동차, 통신, 정보, 원자력, 재생에너지 분야에 두루 근무해 보면서 이런 문제에 수없이 마주쳤다. 현재 한국 산업의 위기나 해법도 융합 연구에 달려 있다.

융합 연구 성패는 팀워크 능력이 좌우한다. 리더십보다는 팀워크십을 강조하게 된 배경이다. 팀워크는 술 잘 마시고 회식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동질성을 강화시켜서 오히려 팀워크에는 방해가 된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도 확인하지 않았는가. 팀워크십은 이질감을 극복 대상이 아니라 발전 원천으로 보는 것이다. 서로 세계관이 다르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중요한 것은 반복 훈련이다. 영국에서는 유치원 교육부터 차별과 편견 극복이 지상과제다. 공항 설명에 기장과 승무원뿐만 아니라 40여 가지 직업이 소개된다. 과목마다 수준별 팀제 학습을 통해 팀 리더도 되어 보고 동등한 수평 역할 분담을 체험한다. 토론과 발표 수업이 많은 것도 서로 다른 생각에 익숙해지는 훈련 과정이다. 이런 영국 사회 분위기에서 창의력도 향상된다. 다이슨 청소기와 '해리포터' 소설이 탄생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와서도 영국 팀워크 훈련은 계속된다. 새로 업무 팀이 구성되면 팀 진단과 팀 빌딩 과정을 거친다. 함께 일할 사람들 개성과 관심사를 서로 알고 호흡을 맞춰 가는 과정이다.

모든 위대한 제국의 비밀은 포용력에 있다. 우리 사회는 서로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은 가상세계(온라인)와 현실세계(오프라인)가 융합(O2O)하는 것이다. 거대한 융합을 주도하려면 포용 교육, 포용 연구, 포용 사회, 포용 경제를 통해 포용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ctrim@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