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미디어 시대의 정보 격차

[ET단상]미디어 시대의 정보 격차

디지털 미디어로 제공되는 정보의 양과 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지만 드넓은 정보의 바다는 시각과 청각 장애인에게 여전히 막혀 있는 세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디어 발달이 오히려 비장애인과 장애인 간 정보 격차를 더욱 확대시킨다. 물론 정보기술과 미디어 발달이 장애인 정보 접근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오로지 수작업에 의존하던 점자 자료나 수어 영상 등 대체 자료 제작과 활용이 수월해졌다.

인력과 비용은 여전히 숙제다. 장애 유형별 정보 접근 방법이나 개인별 정보 인지 능력 차이로 인해 장애인을 위한 정보 미디어 표준화가 어렵고, 대체 자료 제작 과정에서도 대량 생산과 자동화 일괄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헬렌 켈러를 길러 낸 앤 설리번의 수고와 노력을 생각해 보면 장애인의 정보 격차 해소 노력을 효율성으로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

최근에 대통령도 장애인 대체 자료 제공 비율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듯 미디어 발달이 장애인 정보 격차를 오히려 심화시키는 문제에 근본 고민이 필요하다. 정보 격차는 사회 격리나 소득 격차로 연결돼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한 사회 관심과 노력, 더 많은 투자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보 격차 문제가 단지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지금과 같은 미디어 시대에 비장애인에게도 개인·그룹·세대 간 정보 격차로 인한 사회 갈등 문제가 갈수록 증가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옛날과 비교해서 각자 취하는 정보의 양과 내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옛날 어른들이 아침 신문을 통해 얻는 정보 양과 오늘날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얻는 정보 양은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착각을 주지만 사실 개인 정보 능력은 '네이버'나 '구글'과 같은 미디어 포털 기능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는다.

미디어 포털은 정보를 축적하고 빠른 검색 엔진과 화려한 이미지 및 영상 기술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형태로 제공한다. 문제는 미디어 특징이 또 다른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대량의 정보를 내세워 다수의 주장이라고 밀어붙이거나 디지털 삭제와 편집의 용이성을 이용해 누구라도 쉽게 정보를 조작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화려한 이미징 기술을 통해 진실이 아닌 것도 진실로 믿게 할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미디어 작동 논리를 일반인이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없다는 점이다. 포렌식 등 특수한 컴퓨터 해부 기술을 동원하지 않으면 어떤 것이 진실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결국 미디어 구조 속성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정보 격차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6월 3일은 농인의 날이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이날만이라도 청각 장애인의 상황을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제정됐다.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5%는 장애가 있고, 그 가운데 20%가 시각·청각 장애인이다. 특히 청각장애인은 어떤 장애 유형보다도 정보 습득이 어렵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전자점자 자료 및 점자번역기 등 그나마 솔루션이 나와 있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기본 수어 영상 자료의 제작과 배포 체계는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다행히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는 '국가정보화기본법'은 예전의 정보 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을 통폐합, 장애인의 정보 격차 해소 노력을 의무화하는 동시에 사회 전반에 걸친 정보 이용의 건전성과 보편성 보장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법률 선언만 있을 뿐 구체화된 실행 방안은 미흡하다.

정보가 곧 기본 생존권이 되고 있는 시대에 여전히 정보 접근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관심과 배려가 더욱더 필요하다. 미디어의 차고 넘치는 정보가 오히려 개인과 사회에 갈등을 증폭시키는 독이 되지 않도록 사회 전반에 걸친 제도 장치 마련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미디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장애인에게 눈과 귀를 열어 줄 그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믿으며, 동시에 우리 사회의 정보 개념과 인식도 미디어 발전과 함께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기애 국립장애인도서관장 jkiae@korea.kr